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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광산 탁(卓)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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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광산탁씨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광산 탁씨
성씨 탁(卓)
작품명 빛과 화합(和合)
조각가 탁 연 하
조형물번호 47


먼저 광산탁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어두운 세상을 밝게 한 빛은 우리 인류의 삶의 시작이며 생명이요, 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 영원불멸의 공명(빛)이야말로 온세상의 최고의 자산이라고 믿습니다. 따라서 이 조형물은 활활 타오르는 두개의 핵(核·빛=횃불)이 하나로 매듭지어져 우리 문중의 화합, 발전은 물론, 국가와 민족의 화합과 무궁한 번영을 염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광산탁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고려 선종조(1084∼1094)대에 높은 덕망과 학식으로 한림학사와 태사의 벼슬에 오르신 광산군 탁지엽(之葉公, 호 學圃, 시호 文成)을 시조로 모신 광산탁씨는 명문세족으로 대를 이어 번영하였습니다.

충해왕조대에 예의판서와 간의 대부를 지낸 8세 탁광무(光茂, 호 景濂, 시호 文正:1330∼1410)와 조선조 세종조대에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좌참찬겸 찬성사로 재직시 세종대왕에게 조정에서 시금한 일로 「성을 튼튼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임금의 마음을 바르게 함이 최우선」이라고 간한 9세 탁신(愼, 호 竹亭, 시호 文貞:1367∼1426)대에 이르러 가문의 광휘는 절정에 달했으며 두 어른께서는 학문적으로 높이 추앙 받아 안동군 길안면 세덕사에 제향되었습니다.

병란평정에 공이 컷던 15세 탁순창(順昌, 호 松菴:1495∼1594)은 가선대부 훈련대장으로 추서되었고 17세 탁상(祥: 1544∼1597)은 임란(선조25년:1592)에 창의군으로 참전, 권율 장군을 도와 왜적과 분적했으며 정유재란 시 크게 전승을 거두고 전사한 충절로 1633년 조봉대부 호조좌랑으로 증직되었습니다.

그의 아들 탁율(1563∼1597)은 전사하신 부친의 시신을 수습코자 진중에서 적과 싸우다가 순절하니 효자로 명정되었습니다. 또한 19세 탁연(鍊)도 이순신 장군을 보좌해 아우 탁석(錫)-탁원과 함께 의병을 모아 왜적과 수차례 싸워 공을 세우고 당항포 해전에서 순절하였습니다.

「만고에 이 탁씨요, 만고에 이 광산이라. 근세에 이르기까지 전세를 빛내고 후세를 여는 도가 이보다 더함이 그 어느 가문에 있겠는가?」이는 광산탁씨 가문에 대한 한 학자의 평이지만 우리 광산 탁씨 모두의 긍지이기도 합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광산탁씨의 인구는 15,901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tx_wDMd4i4XQrl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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