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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이씨(全州李氏)의 선원파계 왕자군(104왕자) : 안창대군(安昌大君)파 약사 전주 이씨(全州李氏)의 선원파계 왕자군(104왕자)에 관한 자료를 전주이씨대동종약원(全州李氏大同宗約院)에서 발췌하여 한국인의 성씨 밴드페이지에 차례대로 소개합니다. 제왕별목조대왕안창대군(安昌大君)  안창대군(安昌大君)파 약사 안창대군의 휘는 매불(梅拂)이고,목조대왕의 제5남으로서 효공왕후 평창이씨에게서 탄생 하였다. 고려 때에 출사하여 벼슬이 행 예빈시 직장(行禮賓寺直長)이었다. 조선 개국 후에는 정의대부(正義大夫) 호조전서(戶曹典書)에 증직되었다. 또한 1872년(고종 9) 7월 16일에 영희전(永禧殿)에서 작헌례(酌獻禮)를 올릴 때에 대군(大君) 영종정경부사(領宗正卿府事)에 추봉되고 4세손은 습봉(襲封)되어 군(君)에 추증되었다. 대군의 묘단(墓壇)은 함경남도 흥남시 운성리(雲城里) 연곶동(燕串洞)에.. 2025. 3. 8.
감역관(監役官), 선공감(繕工監) 감역관(監役官) 조선 중기 이후, 선공감(繕工監)에 둔 종9품 관직. 조선 초기에 궁궐 관청 등의 건축 공사에 임시로 차출되어 감독 책임을 맡은 관원.정의조선 초기 궁궐 · 관청 등의 건축공사 때 임시로 차출되어 감독의 책임을 맡은 관직.내용의정·판서급의 고관들이 임명되는 경우가 많았다. 1433년(세종 15)에는 상호군 김재(金滓)가 강녕전(康寧殿) 감역관에, 1453년(단종 1)에는 두 의정이 창덕궁 감역관에 임명된 적이 있었다.참고문헌『세종실록(世宗實錄)』『단종실록(端宗實錄)』집필자이영춘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5. 3. 8.
감신(監臣), 육부소감전(六部少監典) 감신(監臣) 신라의 6부 소감전(六部少監典) 중에서 모량부(牟梁部), 한기부(漢祇部), 습비부(習比部)에 두었던 으뜸 관직.육부소감전(六部少監典) 정의삼국시대, 신라의 관청.내용‘육부감전’이라고도 한다. 서울인 경주의 행정을 6부별로 나누어 맡던 관청으로 오늘날의 구청에 해당하였다. 그러나 신라시대에는 6부의 품격에 일정한 차등이 있어, 급량부(及梁部)와 사량부(沙梁部)가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이 본피부(本彼部), 나머지 모량부(牟梁部) · 한기부(漢祇部) · 습비부(習比部)는 가장 낮았다.이것은 육부소감전의 관원조직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즉, 급량부와 사량부에는 장관직을 감랑(監郎)이라 하여 각기 1인이었으며, 그밖에 대내마(大奈麻)가 각기 1인, 대사(大舍)가 각기 2인, 사지(舍知)가 각기 1인이.. 2025. 3. 7.
감수국사(監修國史) 감수국사(監修國史) 고려 춘추관(春秋館)의 최고 관직으로 시중(侍中 : 종1품)이 겸직.정의고려시대, 사관(史館)의 업무를 총괄하던 최고위 관직. 설치 목적고려는 초기부터 역사서를 편찬하는 관부인 사관(史館)을 설치하였다. 그 사관에 감수국사(監修國史)· 수국사(修國史)· 동수국사(同修國史)· 수찬관(修撰官)· 직사관(直史館) 등의 관직을 두었다. 그중 사관의 최고위 관직이 감수국사이다.『고려사』 백관지에 따르면 시중이 감수국사를 겸하였다.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감수국사를 겸임한 인물을 보면 목종 때 한언공(韓彦恭), 문종 때 이자연(李子淵), 선종 때 김양감(金良鑑) 등이 있었다.그렇다고 하여 감수국사를 모두 시중이 겸한 것은 아니었다. 광종 때 감수국사가 된 김정언(金廷彦)과 현종 때의 최항(崔沆).. 2025. 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