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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초계주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초계 주씨
성씨 주(周)
작품명 (宗門成長繁榮)종문 성장 번영
조형물번호 44
먼저 초계주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초계 주씨
성씨 주(周)
작품명 (宗門成長繁榮)종문 성장 번영
조형물번호 44
먼저 초계주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우리 주씨(周氏)는 주(周)나라 종실의 후예로서 주나라의 국명으로 성을 삼았습니다. 당(唐)나라 말엽에 한림학사공 주황(周璜)이 오이(五李)의 난리에 동국(東國)으로 피난하여 정착,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둥근해는 시조 학사공 주황(璜)을 뜻하며 받치고 있는 일자형은 고려선종 때 황금탑과 국청사를 창건 금자광록대부예부상서를 지낸 6세 문경공(文敬公) 주세후(世候)를, 상하 몸체는 아들 주지(砥) 주절 형제를 좌대에, 3계단은 옥천(沃川) 증평(曾平) 목천(木川) 3파를, 상단에 아홉개 조형물은 옥천 증평 목천 이원 신계 청양 삼척 청안 보은을 뜻합니다.
둥근해는 시조 학사공 주황(璜)을 뜻하며 받치고 있는 일자형은 고려선종 때 황금탑과 국청사를 창건 금자광록대부예부상서를 지낸 6세 문경공(文敬公) 주세후(世候)를, 상하 몸체는 아들 주지(砥) 주절 형제를 좌대에, 3계단은 옥천(沃川) 증평(曾平) 목천(木川) 3파를, 상단에 아홉개 조형물은 옥천 증평 목천 이원 신계 청양 삼척 청안 보은을 뜻합니다.
한 시조에서 출발하여 형제 3파(三派) 9종중(九宗中)이 태양 같은 시조를 모시고 효제지심 소원지족 자손만대 길이 번창 모범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종문에 영광 번영을 기원하는 표현이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초계주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초계주씨(草溪周氏)는 조자황제헌원(肇自黃帝軒轅)으로 주씨왕실에 예락문물과 전장법도를 융흥발전하여 사해만방에 종주국 이러니 종국수망에 이주위성하고 당장종시(唐莊宗時)에 유한림학사 주황(周璜)이 오계지란(五季之亂)을 피하여 동국으로 즉 신라(新羅) 52대 이공왕 11년 서기 907년에 오시어 교남 땅 초계부(草溪府) 현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草溪面)에 정착, 후손들이 주황(周璜)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초계(草溪)로 위관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의 아들 부흥인(興寅)이 신라 효공왕 때 집사성 대사에 올랐으며 시중을 거쳐 아간(阿干)에 이르러 고려 때 보문각 대제학을 지낸 손자 주빈(斌)과 함께 가문을 중흥시켰죠. 6세 주세후(世候)가 고려 선종 때 황금탑과 국청사(國淸寺)를 창건하고 금자광록대부 예부상서를 지내 명성을 날렸으며 그의 아들 주지(砥)와 주절 형제 후손에서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되어 가문의 융성을 누렸습니다.
조선조에 와서는 주언방(彦邦)은 문과 은자광록대부 전법판서 정주군에 올랐고, 주희(禧) 자헌대부 공조판서 희사헌부감찰 겸 돈영부사, 주세흥(世興)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 증가선대부 호조참판 금성군, 공주판관을 역임한 주명흠(命欽),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를 지내신 주몽득(夢得), 공조참의를 지내신 주경손(敬孫), 통훈대부 한성판관을 지내신 주의손(義孫) 등이 역대 중요 인물이입니다.
11세 주겸(謙) 지손 도은공 유지후 상주계(尙州系), 12세 주사옹지후(士雍之后) 삼계계(森溪系), 12세 주영찬지후(英贊之后) 함안계(咸安系), 13세 주영지후(瑛之后) 장흥계(長興系), 13세 주서지후(瑞之后) 안의계(安義系)가 되었고 초계(草溪)는 시조 학사공 주황(璜)에서 현재까지 계승해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초계주씨(草溪周氏)는 3파(三派) 옥천(沃川), 증평(曾坪), 목천(木川) 派가 있고, 沃川파에는 옥천, 이원, 청양, 삼척, 종중이 있고, 증평파(曾坪派)에는 목천, 신계, 증평, 청안 종중이 있고, 목천파(木川派)에는 목천, 보은 종중이있습니다. 전체 3파 9종중으로 편성되어있습니다.
한말(韓末)과 현대를 잇는 격동기에 사회 각계로 진출한 많은 후손들이 충절의 전통을 이어 눈부신 활약으로 종문의 명예를 지키고 있습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초계주씨의 인구는 8,713명이었습니다.
초계주씨(草溪周氏)는 조자황제헌원(肇自黃帝軒轅)으로 주씨왕실에 예락문물과 전장법도를 융흥발전하여 사해만방에 종주국 이러니 종국수망에 이주위성하고 당장종시(唐莊宗時)에 유한림학사 주황(周璜)이 오계지란(五季之亂)을 피하여 동국으로 즉 신라(新羅) 52대 이공왕 11년 서기 907년에 오시어 교남 땅 초계부(草溪府) 현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草溪面)에 정착, 후손들이 주황(周璜)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초계(草溪)로 위관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의 아들 부흥인(興寅)이 신라 효공왕 때 집사성 대사에 올랐으며 시중을 거쳐 아간(阿干)에 이르러 고려 때 보문각 대제학을 지낸 손자 주빈(斌)과 함께 가문을 중흥시켰죠. 6세 주세후(世候)가 고려 선종 때 황금탑과 국청사(國淸寺)를 창건하고 금자광록대부 예부상서를 지내 명성을 날렸으며 그의 아들 주지(砥)와 주절 형제 후손에서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되어 가문의 융성을 누렸습니다.
조선조에 와서는 주언방(彦邦)은 문과 은자광록대부 전법판서 정주군에 올랐고, 주희(禧) 자헌대부 공조판서 희사헌부감찰 겸 돈영부사, 주세흥(世興)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 증가선대부 호조참판 금성군, 공주판관을 역임한 주명흠(命欽),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를 지내신 주몽득(夢得), 공조참의를 지내신 주경손(敬孫), 통훈대부 한성판관을 지내신 주의손(義孫) 등이 역대 중요 인물이입니다.
11세 주겸(謙) 지손 도은공 유지후 상주계(尙州系), 12세 주사옹지후(士雍之后) 삼계계(森溪系), 12세 주영찬지후(英贊之后) 함안계(咸安系), 13세 주영지후(瑛之后) 장흥계(長興系), 13세 주서지후(瑞之后) 안의계(安義系)가 되었고 초계(草溪)는 시조 학사공 주황(璜)에서 현재까지 계승해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초계주씨(草溪周氏)는 3파(三派) 옥천(沃川), 증평(曾坪), 목천(木川) 派가 있고, 沃川파에는 옥천, 이원, 청양, 삼척, 종중이 있고, 증평파(曾坪派)에는 목천, 신계, 증평, 청안 종중이 있고, 목천파(木川派)에는 목천, 보은 종중이있습니다. 전체 3파 9종중으로 편성되어있습니다.
한말(韓末)과 현대를 잇는 격동기에 사회 각계로 진출한 많은 후손들이 충절의 전통을 이어 눈부신 활약으로 종문의 명예를 지키고 있습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초계주씨의 인구는 8,713명이었습니다.
초계주씨 시조 한림학사 주황의 영정 / 후대에 자손들에 의하여 복원
https://youtu.be/zIShGYE750Q?si=txrvpGvN9cwg4J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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