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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경주 석(昔)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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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경주석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경주 석씨
성씨 석(昔)
작품명 영원의 시간
조각가 석 현
조형물번호 94


먼저 경주석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이 상부와 하부로 나눠진 것은 땅과 하늘을 상징합니다. 상부 8개 기둥은 석씨 8왕, 밖을 향해 벌어진 것은 자손의 번성, 번영이 세상을 향해 뻗기를 원하며, 상단에 신라왕의 상징인 금관을 얹었습니다.
측면 문양은 탈해가 탄생하실 때 하늘에서 비친 서광과 수많은 까치들 사이에서 배를 타고 온 아기가 상자에서 발견된 설화를 나타냅니다. 남해왕께서 성명을 지어 주실 때 말씀하신 까치 작(鵲)자에서 새 조(鳥)자를 날려 보내고 남은 글 석(昔)을 성으로, 알에서 깨어나고 궤를 열고 나왔다하여 탈해(脫解)라고 이름 붙인 설화를 표현하였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경주석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석씨의 탄생:
삼국사기에 의하면 기원전 5년(박혁거세 52년)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아진포 포구에서 석씨의 시조인 석탈해 왕이 탄생했습니다. 이를 기리기 위해 탄생지에는 지방기념물 제79호로 지정된 탄강유허비각이 있죠.

-석씨의 창씨와 왕의 등극:
탈해는 어려서부터 말과 글 그리고 지혜와 풍채가 뛰어나 남해 왕께서 소년을 입궐케 하여 대면하던 중 성과 이름이 없음을 알고 “소년이 처음 태어날 때 까치들이 우짓다가 그 새들이 모두 날아가고 아기만 남았으니 까치 작(鵲)자에서 새 조(鳥)자를 없애고 옛 석(昔)자만 남겨 성으로 하고, 궤를 열고 알에서 깨어났으니 이름을 탈해(脫解)로 하라”고 하면서 친히 성명을 지어 주셨다고 합니다. 그는 대보의 관직을 거쳐 서기 57년에 신라 제4대 왕으로 등극하였습니다.

신라 석씨 8왕 : 재위 통산 173년
제4대 석탈해 왕
제9대 석벌휴 왕
제10대 석내해 왕
제11대 석조분 왕
제12대 석첨해 왕
제14대 석유례 왕
제15대 석기림 왕
제16대 석흘해 왕

-왕릉과 숭신전:
탈해 왕이 서기 80년에 돌아가시자 궁궐 북쪽 양정 언덕(경주시 동천동 350번지)에 왕릉을 모셨는데 사적 제174호로 지정되어 있고, 동편에는 광무5년(서기 1898년)에 숭신전(崇信殿)을 건립하여 시조왕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를 올리니 경상북도 문화재 제25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경주석씨의 인구는 8,740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SApmMaK262ZVND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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