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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시산경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시산 경씨
성씨 경(景)
작품명 애(愛)
조각가 박운선, 박석희
조형물번호 91
먼저 시산경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시산 경씨
성씨 경(景)
작품명 애(愛)
조각가 박운선, 박석희
조형물번호 91
먼저 시산경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원형의 조형물은 가족의 첫 단계인 부모의 의미를 갖습니다. 테두리 안의 세 개의 조형물은 동양에서 말하는 완성, 안정 됨의 숫자를 상징하며 가정을 이루고 부모와 자녀들은 세상의 순리대로 안정을 갖는 기본 순리 인 것이죠. 이 조형물은 이런 상징성을 토대로 태인(시산)경씨의 안정감 있는 번창과 평안을 기원 하도록 하였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시산경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태인(시산)경씨는 그 연원(淵源)과 유래는 멀고 깊습니다. 옛 중국 하, 은, 주 삼대시절에 은나라에서 기자가 동방을 방문함에 그를 호종하여 왔던 경여송(景汝松)이 평양에 정착하니 태인(시산) 경씨의 시조입니다.
이후 삼한 삼국시대를 거치면서 그 세손이 실전되었으며 고려조에 이르러 그 후손 문목공 경차(文穆公 磋)가 문과에 올라 추밀원부사와 문하시중평장사에 이르고 나라에 공훈을 세우니 태산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그의 아들 충익공 경설정(洩淨) 또한 문무양과로 조정에 나아가 보문각 대제학에 이르고 북변으로 침입하여 온 외적을 크게 무찌른 무공으로 태산군 호를 세습하니 문목공(文穆公)을 1세조로 하고 태인(시산)을 관향으로 하는 태인(시산)경씨가 창성된 것입니다.
태산과 시산은 같은 지명으로 지금의 전북 정읍시 태인면의 옛 이름이다. 2세 충익공이 세 아들을 두니 큰 아들 경상조(祥祖)는 광록훈보국사 직제학 대사공으로 금구파(金溝派)의 파조요. 둘째 아들 좌복사공 경상(祥祿)록은 고부파(古阜派)와 해주파(海州派)의 파조이며, 셋째 아들 경록조는 성절사위훈련직제학인데 그 후손들은 알 수가 없습니다.
대사공 경상조의 9세손 경세양은 무과에 등제하여 병마절도사이며 시산군에 봉해졌습니다. 대사공의 12세손 경거륜은 랑천현감이요. 부모효행이 지극하여 3단지(三斷指)하였으며 당월리에 쌍계 서원을 건립하여 많은 후학을 배출하고 현재 그 비를 보존하고 있습니다.
좌복사 경상록의 10세손 경청공(淸公)은 대명건문 황제위 좌첨의도어사였는데 건문제가 연왕으로부터 제위를 빼앗겨 이를 복위코자 죽기로 항거하다 결치박피(抉齒剝皮)의 극형으로 죽으니 건문제삼충의 한 분으로 이름이 높죠. 현재 신도비는 도어사공파 문중 선산에 재적하고 있습니다.
태인(시산)경씨가 고려 이후 조선조 초에 걸쳐 과환충절(科宦忠節)과 효행문덕으로 이름 높은 거벽들이 기라성처럼 배출되어 문무과에 등제하여 국가에 공헌하였으니 씨족의 성예를 말할 수 있지 않으랴(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시산경씨의 인구는 본관 시산 1,347명, 본관 태인 1,223 명으로 합계 2,570명이었습니다.
태인(시산)경씨는 그 연원(淵源)과 유래는 멀고 깊습니다. 옛 중국 하, 은, 주 삼대시절에 은나라에서 기자가 동방을 방문함에 그를 호종하여 왔던 경여송(景汝松)이 평양에 정착하니 태인(시산) 경씨의 시조입니다.
이후 삼한 삼국시대를 거치면서 그 세손이 실전되었으며 고려조에 이르러 그 후손 문목공 경차(文穆公 磋)가 문과에 올라 추밀원부사와 문하시중평장사에 이르고 나라에 공훈을 세우니 태산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그의 아들 충익공 경설정(洩淨) 또한 문무양과로 조정에 나아가 보문각 대제학에 이르고 북변으로 침입하여 온 외적을 크게 무찌른 무공으로 태산군 호를 세습하니 문목공(文穆公)을 1세조로 하고 태인(시산)을 관향으로 하는 태인(시산)경씨가 창성된 것입니다.
태산과 시산은 같은 지명으로 지금의 전북 정읍시 태인면의 옛 이름이다. 2세 충익공이 세 아들을 두니 큰 아들 경상조(祥祖)는 광록훈보국사 직제학 대사공으로 금구파(金溝派)의 파조요. 둘째 아들 좌복사공 경상(祥祿)록은 고부파(古阜派)와 해주파(海州派)의 파조이며, 셋째 아들 경록조는 성절사위훈련직제학인데 그 후손들은 알 수가 없습니다.
대사공 경상조의 9세손 경세양은 무과에 등제하여 병마절도사이며 시산군에 봉해졌습니다. 대사공의 12세손 경거륜은 랑천현감이요. 부모효행이 지극하여 3단지(三斷指)하였으며 당월리에 쌍계 서원을 건립하여 많은 후학을 배출하고 현재 그 비를 보존하고 있습니다.
좌복사 경상록의 10세손 경청공(淸公)은 대명건문 황제위 좌첨의도어사였는데 건문제가 연왕으로부터 제위를 빼앗겨 이를 복위코자 죽기로 항거하다 결치박피(抉齒剝皮)의 극형으로 죽으니 건문제삼충의 한 분으로 이름이 높죠. 현재 신도비는 도어사공파 문중 선산에 재적하고 있습니다.
태인(시산)경씨가 고려 이후 조선조 초에 걸쳐 과환충절(科宦忠節)과 효행문덕으로 이름 높은 거벽들이 기라성처럼 배출되어 문무과에 등제하여 국가에 공헌하였으니 씨족의 성예를 말할 수 있지 않으랴(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시산경씨의 인구는 본관 시산 1,347명, 본관 태인 1,223 명으로 합계 2,570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qeGAM7Qkqvt1yVx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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