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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통천 김(金)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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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통천김씨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통천 김씨
성씨 김(金)
작품명 마의麻衣의 고혼孤魂
조각가 김준만
조형물번호 89

#통천김씨

먼저 통천김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불꽃과 족자로 조형되었죠. 불꽃은 마의태자의 구국정신을 표상하고 족자는 후손들의 사적을 상징합니다. 이 두 조형을 통하여 구국을 염원했던 마의태자의 정신과 고단한 시련 속에서도 연면히 이어 온 한 성씨의 가통을 만날 수 있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통천김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고려 우왕 6년, 서기 1380년에 기록된 중랑장공 외가호구입안(中郞將公外家戶口立案)을 근거로 1701년에 발간된 통천김씨족보 초간본에 통천김씨의 시조는 마의태자(麻衣太子)의 아들 통천군 김교(較)로 기록됩니다. 묘는 강원도 통천군 통천읍 동봉곡(洞鳳谷)에 모셔져 있고, 사당은 통천군 통천읍 감당면(甘棠面) 내동(內洞)에 모셔져 있습니다.

후손들은 강원도 통천 일대에 세거하면서 김이청(以淸)은 시중, 김위(渭)는 정승에 올랐다고 기록되지만, 역사적 시련으로 선계(先系)를 정확히 고증 할 수 없어 고려말 광정대부 판도판서 문한학사(文翰學士) 김원등(遠登)을 중시조로 모셔 계대하고 있습니다.

중시조 이후 3세손 진산교도(珍山敎導) 김여산(如山)의 후손을 진산공파, 군수(郡守) 김중령(仲齡)의 후손을 군수공파, 전직(殿直) 김중복(仲福)의 후손을 전직공파로 분파하여 오늘에 이릅니다.

조선시대에는 후손들이 관직을 따라 강원도 통천에서 전라도 완산(完山)으로 이주한 후 전직공파 9세손 김빙(憑)이 기축옥사(己丑獄事)에 무고로 연루된 뒤 후손들이 흩어지고, 정유재란 때에는 군수공파의 많은 젊은이들이 의병으로 출정하여 전몰하였습니다.

유적은 강원도 통천 일대와 전북 완주군 구이면 두현리, 전북 전주시 안덕원, 전북 완주군 소양면 이림리, 충남 서천군 비인면 관리, 충남 서천군 판교면 문곡리, 충남 보령시 남포면 옥동리 등에 남아 있습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통천김씨의 인구는 5,669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JB6qJxnVLpzVOG_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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