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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양천 허(許)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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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양천 허(許)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오늘은 양천허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양천허씨
성씨 허(許)
작품명 기(氣)
조각가 임 혜 숙 (경희대학교 미술대학원 졸)
조형물번호 5
먼저 양천허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천지가 변화하며 한번은 찼다가 한번은 비게 되니 형체는 기(氣)에서 생(生)하고 기(氣)는 형체에 가리워집니다.

일월(日月)의 번갈아 밝음, 한서(寒暑)의 왕래, 나고 죽음, 인사(人事)의 선악, 세도(世道)의 쇠태와 융성 등이 모두 하나의 기가 변환하는 것으로 사람과 천지의 바른기가 서로 감동되어 천도(天道)를 일으키고 무한한 우주공간을 비상하는 기개를 상징한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양천허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양천허씨(陽川許氏)의 시조 허선문(許宣文)은 공암현(孔巖縣) 현재 서울 양천구와 김포일대에서 대부농으로 많은 재물과 곡식을 비축하고 있었습니다.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후백제 견훤(甄萱)을 정벌시 군량이 떨어져 곤경에 처했을 때 많은 군량을 도와 왕건으로 하여금 후백제를 멸하고 고려를 세우는데 크게 공헌하였죠.

이에 왕건 태조(王建太祖)가 그 충의에 감개하고 허선문(許宣文)과 마주하니 공의 나이 99세 인데도 위풍이 당당하고 정숙한 지라 크게 감동하고 가부(假父)로 모시며 고려개국 벽상공신 공암촌주(高麗開國 壁上功臣 孔巖村主)로 봉하고 공암땅을 식향으로 하사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관적을 공암이라 했으며 오늘날 동주사공 판도좌랑공 대제학공의 삼계파(三系派)로 나뉘어 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양천허문(陽川許門)은 고려와 조선조를 통해 정승 16인, 중추원사 6인, 학사 9인, 호당과 청백리 각 6인, 공신 9인, 봉군 36인 그외 많은 문형과 옥당을 배출하는 등 적은 인구이면서도 동방의 명문벌족을 이루었습니다.

형제 정승에다 청백리로 이름난 충정공 허종(忠貞公 許宗)과 문정공 허침(文貞公 許琛) 대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초당공 허엽(草堂公 許曄)과 허성(許筬), 허봉(許篈), 허균(許筠), 허난설헌(許蘭雪軒)이 있죠.

그리고 허씨 불멸의 명저 동의보감(東醫寶鑑)을 편찬한 동방의 의성 양평군 허준(陽平君 許俊), 높은 학문으로 정승에 오른 부훤당 허욱(負暄堂 許頊)과 묵재공 허적(默齋公 許積) 그리고 학문과 문장, 서예에 뛰어나고 유림으로부터 청의의 사범 도덕군자로 숭앙받는 문정공 미수 허목(文正公 眉叟 許穆) 등은 모두 허문(許門)을 빛낸 공암의 후손들입니다.(문중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양천허씨는 149,505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https://youtu.be/hoFdl-XcY1k?si=Qofn1a6IJ4_aFlja

https://youtu.be/lK91itI9VmM?si=kiyHOcO-H1jMxF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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