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금산 김(金)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4. 29.
728x90

오늘은 금산김씨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금산 김씨
성씨 김(金)
작품명 웅비(雄飛)
조각가 김 지 삼 (한국조각가협회이사)
조형물번호 4

먼저 금산김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두사람의 인체에 직선과 곡선을 사용한 것은 강함과 부드러움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서로 화합하고 단결을 나타냅니다. 두팔을 크게 벌림은 금산김씨(錦山金氏)의 자손들이 힘차고 용기있게 나가 세상을 표용함을 나타내죠. 삼각형구도를 이루는 것은 안정속에 금산김씨(錦山金氏)의 자손만대로 번영과 발전을 기원하는 의미를 나타낸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금산김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금산김씨 시조 김신(金侁)은 신라 경순왕의 제4자 은열(殷說)공의 제15세 손으로 자(字)를 윤직 호(號)를 낙천제(樂天齊)라 합니다. 김신은 고려 고종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 좌정언을 거쳐 원종8년 정묘(丁卯 1267年)에 추밀원부사로 왕을 호종하여 원나라에 갔다가 원제로부터 정서대원수의 대임을 받아 만노(萬奴)의 여환(余患)을 제하고 또 강서인주적(江西 鱗州賊)을 토평한 공으로 금자광록대부 요양성참정(遼陽省參政) 에 제수 되었습니다.

원종11년 경오(庚午)에 귀국하니 김신이 원나라 체재 시 국가를 위하여 공헌한 바 크므로 그의 고향인 진예현(進禮縣)을 금주(錦州)로 승격하여 금주군(錦州郡: 現錦山)에 봉함으로 본관을 금산(錦山)으로 정하였죠.

계유(癸酉)에 상장군 평장사에 임명되어 하절사(賀節使)로 원나라에 다녀오고 갑술(甲戌)에 좌군사로 중군사 김방경(金方慶)과 왜국정벌에 참전 하였다가 일기도(一岐島)에서 전사하니 시호를 충간(忠簡)이라 하고 칙명으로 사당(황풍사)을 세우고 향사 하게하여 리명(里名)도 황풍리라 칭합니다. 또 무주 유림이 죽계서원에서 향사를 하고 있습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금산김씨는 16,234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https://youtu.be/BMM7mnNtzek?si=hVaZufkIv63wbUKx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