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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안음 서문(西門)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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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안음서문씨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안음 서문씨
성씨 서문(西門)
작품명 서문가(西門家) 바위
조각가 이 유 미
조형물번호 7

#안음서문씨

먼저 안음서문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고려말의 충신으로서 태조 이성계의 부름에도 굴하지 않고 금원산 바위에서 운둔하며 선비로서의 지조를 지켰던 서문씨의 시조 서문기(西門 記)를 기념하여 만든 작품입니다. 그후 그 바위를 서문가 바위라 칭하였으며 현재 경남 거창군 위천면 금원산 자연 휴양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갓을 쓴 사람모양의 비석은 서문씨 시조를 의미하여 후면의 바위는 실제 서문가(西門家) 바위의 형상을 따라 제작한 것으로서 선비의 정신을 영구히 기리고자 함이 본 작품의 목적이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안음서문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시조(始祖): 서문 기(西門 記)
봉위: 안음군(安陰君)

성씨유래

춘추전국시대에 정(鄭)나라의 대부(大夫)가 서문(西門)에 살고 있을 때 어진 덕이 있으므로 이로 인하여 서문씨(西門氏)의 성(姓)을 받으니 이른바 사유복성(四維復姓)의 하나가 된 것입니다. 시조 서문 기(西門 記)는 고려 공민왕으로부터 안음군(安陰君)에 봉해졌으며 고려말의 충신으로서 그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여 여러번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금원산 바위(일명 서문가바위)에 머무르면서 선비로서의 지조(志操)를 지켰습니다. 그후 자손들이 안음(安陰)으로 본관을 삼아 세계를 계승하고 있습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안음서문씨는 1,934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https://youtu.be/C29yLcXf8yY?si=9QWz5PVul1jhWg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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