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해주 최(崔)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6. 24.
728x90
오늘은 해주 최(崔)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해주최씨
성씨 최(崔)
작품명 밝음만이 있는 눈
조각가 김 석 우 (충남대학교 예술대 교수)
조형물번호 43

먼저 해주최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조형물은 전체적으로는 한자 '崔'자의 획이 담긴의미를 생명의 '눈'으로 조형화 했습니다. 상단의 '山' 이미지는 변함없는 푸르름과 우직스런 상징을 인간화 하였죠. 중단의 획과 탑형은 바른심성을 쌓아가는 디딤돌이며 자연과 인간의 중심을 도형화 하였습니다. 하단의 골반형상은 대지의 생명성을 무한대로 열어주는 터전을 담았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해주최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해주최씨는 고려시대부터 학자와 공신이 많은 고려 제1의 명문거족이며, 시조는 해주 목민관(뒤에 판이부사)으로 선정을 베푼 학자로 명망이 높았던 최온(崔溫)이며, 대대로 해주에 살아서 본관이 해주이죠.

해주최씨의 대표 인물은 해동공자 최충(崔沖)입니다. 최충은 시조의 외아들로 성종5년(986∼1068) 해주에서 탄생하여 20세 때(1005년) 예부시(춘관시) 문과에 장원급제 후 벼슬길에 올라 다섯 임금을 모셨죠. 그는 형법을 비롯한 많은 법률의 정비, 제정과 정치, 경제, 국방, 외교, 사회복지, 교육, 문화 등 고려발전의 황금시대를 주도한 정1품 태사, 중서령, 문하시중으로 궤장(机杖)을 받은 대 정치가이자 사상가이죠.

최충은 문종9년(1055년) 70세에 관직에서 물러나 국가 최고 고문으로서, 최초의 사립학교로 12공도(公徒) 중 제1명문인 구재학당(九齋學堂)을 세워 후학양성에 여생을 바친 유종(儒宗) 즉, 유학의 대표스승으로서 오늘날까지 해동공자로 추앙 받는 고려 최고의 원로공신입니다.

문종은 최충에게 『여러왕조 동안 학문으로 나라를 빛낸 우리나라 유학의 대를 이은 유종으로 온 나라의 큰 덕인이며 학계의 표준이고 행정부의 빛으로 공적이 역사에 길이 빛날 봉황처럼 뛰어난 인물이다』라고 했죠.

최충은 문종 22년 83세로 최고공신에 고려 태사, 중서령으로 별세하자 시호(諡號)를 문헌(文憲)으로 하사하고 위패를 뒤에 선종한 정종 묘정 첫머리에 배향했죠. 자손들도 훌륭해 최유선, 최사추가 3대를 이어 고려 수상을 또 최유엄, 최규서 등 수십인이 수상, 부수상 유종 등을 지냈죠.

그 외 수많은 명신과 공신, 청백리, 충신열사, 효자, 대학자 등이 이어 배출되어 이 나라의 역사를 빛내왔습니다. 해주최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49명, 무과 46명, 사마시 161명 등 262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했습니다(뿌리공원 문중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해주최씨의 인구는 201,625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txrvpGvN9cwg4JRb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