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무안 유(兪)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무안 유씨
성씨 유(兪)
작품명 무궁한 번영의 무안유씨
조각가 이진자
조형물번호 242
먼저 무안유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무안유씨의 무궁한 번영과 문중 간의 융합된 상징을 지구형태로 구상하여 상단에 배치하고, 빛나는 조상의 얼을 널리 알리고자 스테인리스 재료를 선택하여 태양광선과 소통할 수 있는 조형의지를 담고자 했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무안유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무안유씨(務安 兪氏)는 유순직(舜稷) 장사군(長沙君)을 시조로 하고 있습니다. 유순직(舜稷)은 고려 예종 때 삼중대광검교소부감(三重大匡檢校小府監)을 역임하고 공훈으로 장사군(長沙君)에 봉해짐으로써 후손이 장사(長沙)를 본관으로 하였습니다.
그 후 장사군(長沙君)의 증손 유천우(千遇) 문도공(文度公)은 희종5년(1209)에 출생하여 고종 때 문과에 급제 이부시랑 좌우승선 정당문학을 거쳐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누진되고 충렬왕 때 원(元)나라의 하정사(賀正使)로써 탁월한 외교력을 발휘하여 국위를 선양한바 있고 기타 많은 공로로 무안부원군(務安府院君)에 봉해졌습니다.
이를 계기로 본관을 무안(務安)으로 하게 되었고 충렬왕2년(1276)에 별세한 후 그에게는 문도(文度)의 시호가 내려졌으며 2007년에 고려 충▪공신으로 고려대전에 배향됐습니다. 공의 증손 유천(蕆) 송은공(松隱公)은 충숙왕9년(1332)송경에서 출생 문과에 급제하여 고려 예의판서로 누진 되었죠.
고려가 망한 후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여 조선 예조판서직을 제수하였으나 불사이군의 충절로 이를 고사하고 은거함으로써 망국의 애절함을 “귀산사십운(歸山詞十韻)”에 남겼으며 태종원년(1401)에 별세하여 1814년 고려충신 사우인 송산사(松山祠)에 배향되었습니다. 유천의 증손인 유희익(希益) 역암공(易菴公)은 1456년에 문과에 급제 유학, 역학의 대가로 가정대부행성균관대사성(行成均館大司成)이 제수되고 역학, 성리학에 정통하여 정무에 기여한 바 지대하였습니다.
유희익의 증손 유세호(世豪) 우산공(牛山公)은 문과에 급제 사인, 전한을 역임하고 가선대부 홍문관제학에 누진했으나 당쟁파화로 불안한 정세에 후손들의 피해를 우려하여 각각 분거시켜 그의 장남인 유여옥(汝沃)은 영남지방으로 낙향하였으나 후예의 존재가 불명합니다.
차남 유여정(汝貞) 홍은공(洪隱公)은 예문관응교직을 역임한바 있으나 연산정난으로 지금의 홍성지역인 홍주(洪州)로 낙향하여 후학 양성에 전념하고 후손이 번창하여 홍은공(洪隱公)의 장남 유장(璋)의 후손은 보령파(保寧派)를 이루고, 차남 유침(琛)의 후손은 청양파(靑陽派)를 이루었으며, 우산공(牛山公)의 삼남인 유여흡(汝洽)의 후손은 양주파(楊州派)를 이루고 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무안유씨의 인구는 5,896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I-_Mx1yRL7lvt2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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