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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수원 김(金)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5.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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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수원 김(金)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수원 김씨
성씨 김(金)
작품명 하나되어…
조각가 이광재
조형물번호 215

먼저 수원 김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의 위쪽 부분 튀어 나온 두 개의 형상은 음양의 조화로 온 인류가 하나됨을 의미합니다. 가운데 부분 원 형상은 어머니 같은 따뜻한 마음과 사랑으로 인류를 포용한다는 의미이죠. 아래의 받침은 두손으로 어른을 충효의 정신으로 받들어 공경한다는 뜻입니다. 로고는 문, 무를 겸한 문중을 나타냄과 동시에 시각적으로 강한 뿌리에 대한 공경과 대대손손의 번영과 영원함을 느끼도록 작품구상을 하였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수원김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수원김씨의 시조는 신라 경순왕의 증손 소보공(少保公)으로 김품언(稟言)입니다. 할아버지는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大安君)으로 김은열(殷說)이고, 아버지는 봉어(奉御)공으로 김렴(濂)입니다.

시조 김품언(稟言)은 태자소보(太子少保) 평장사(平章事)로 고려 현종 9년(서기 1018년) 거란 군이 대거 침입할 때 상원수로 출전하여 이를 대파한 여덟 장수 중 한 사람으로 개선할 때 왕이 영파역(迎波驛)에 나와 환영 위로였다고 하죠.

왕은 금화 팔지(金花八枝)를 장군들 머리에 친히 꽂아 주고, 화상(畵像)을 공신 각(功臣 閣)에 걸도록 한 후 충순적덕정란공신(忠順積德靖亂功臣)으로 책록(策錄)하였습니다. 벼슬은 금자광록대부 삼중대광문하시랑평장사(金紫光祿大夫 三重大匡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으며, 김품언을 수성군(隋城君)으로 봉군(封君) 하고 수성(隋城,지금의 수원)을 식읍지로 하사하여 수원김씨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이에 수원(水原)을 관향으로 삼아 조상들의 찬란하게 빛난 얼이 길이길이 이어 왔으며, 조상들의 자랑스럽고 훌륭한 위업과 유적을 오늘에 이르러 이 뿌리공원에 유래를 밝힙니다(뿌리공원 문주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수원김씨의 인구는 21,060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EGCGxVFiIhnUjEM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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