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백주 태(太)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백주 태씨
성씨 태(太)
작품명 번창(繁昌), 부귀영광(富貴光明)
조각가 박진우
조형물번호 213
먼저 백주 태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고구려 장수인 대중상 시조와 해동성국 발해국 고황제 대조영의 역사성을 사선과 직선의 주 조형물로 표현하여 선조의 기백을 표상하였습니다. “太”를 원형에 새김으로써 협계 · 영순파의 결속력과 화합을 의미하였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럼 이제 백주태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태 太씨는 해동성국 발해(渤海)를 건국한 고황제 대조영(大祚榮) 후손입니다. 시조는 고구려 장수인 대중상(大仲像)이며 아들 대조영이 서기 698년 발해를 건국한 이래 15대에 걸쳐 229년간 융성하였으나 거란의 침입으로 서기 926년 국운이 다하여 공현황태자(光鉉皇太子)가 발해 유민을 이끌고 고려로 넘어오니 태조 왕건이 크게 예우하여 원보벼슬과 함께 황해도 백주 (현재지명: 황해남도 배천군) 땅에 정착해 조상의 제사를 모시게 하였습니다.
서기 1231년(고종 18년) 태집성(太集成) 장군이 몽고군을 격퇴한 큰 공을 세워 협계군(陜溪君)에 봉해진 수사공 집성대장군과 서기 1259년(고종 46년) 태금취(太金就) 장군이 몽고군을 격퇴한 큰 공으로 영순군(永順君)에 봉해진 금취대장군을 각각 중시조로 모시던 협계 ▪ 영순 후손들이 2010년 족보를 통합하고 광현황태자가 고려에 정착해 제사를 모셨던 백주를 새로운 본관으로 삼았습니다.
태씨가 된 연유는 고려사에 대 大와 태 太가 혼용, 기록되고 동사통감에 발해 고황이 태조영(太祚榮)으로 기록되어 있는 등 大와 太는 같은 의미로 사용 된 데서 유래 되었으며 씨족 중 일부는 현재에도 大씨로 남아있습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에서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태씨의 인구는 본관 영순 4,626명, 기타 4,437명으로 합계 9,063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R5DhvuzkQ1-fM7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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