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청주 경(慶)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청주 경씨
성씨 경(慶)
작품명 화합과 번영의 노래
조각가
조형물번호 214
먼저 청주경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청주경씨 문중의 강직한 성품을 내명의 직선으로 상징화 하였습니다. 화목한 문중의 아름다운 마음들을 외부의 흐르는 듯 감싸 안은 유연한 선의 흐름으로 형상화한 작품이죠. 서로 조화롭게 화합하는 문중의 기운이 상승 발화하여 번창하기를 기원하며 노래하는 모습의 조형상이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청주경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청주경씨는 라말여초(羅末麗初)에 청주의 유력한 호족으로 세거하여 왔음을 청주 용두사지 철당기의 기록으로 알 수 있으며 경씨가 고려초 청주의 토성으로 분정되어 있음을 세종실록지리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수백 년 간 사실과 연대가 역사에 빠져 있어 상고할 수 간에 새겨져 있죠.
그로부터 수백여 년 간 사실과 연대가 역사에 빠져 있어 상고 할 수가 없으며 고려의 종조에 청주사심관을 거쳐 명종조에 광정대부중서시랑평장사(匡靖大夫中書侍郞平章事)를 지낸 경진(慶珍)을 시조로 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 경대승(慶大升)은 명종조대장군으로 무신들이 반역하여 조정을 장악국권을 농락하고 있을 때 분연히 의거하여 역신들을 주살조정을 위난에서 구하였습니다.
국권이 손안에 있음에도 부친이 별세하자 전 재산을 군부에 헌납하고 왕이 내리는 승선(承宣) 벼슬도 사양하여 오직 사직과 백성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애쓰다 삼십세 젊은 나이에 병사한 청년 충신 장군이죠. 그 후 삼십여년간 다시 세계(世系)가 분명치 못하여 고려 고종조 호부상서평장사(戶部尙書平章事)를 지낸 경번(慶蕃)을 1세조로 하여 계대(繼代)하고 있습니다 .
경씨의 본관을 청주로 하게 된 것은 시조를 비롯하여 누대에 걸쳐 토성(土城)으로 살아 온 발상지가 청주이고 4세조 경복흥(慶復興)이 고려말 벽상삼한 삼중대광 문하시중(壁上三韓三重大匡門下侍中)을 지내고 정렬(貞烈)의 시호와 청원부원군(淸原府院君)의 작호를 받은 데서 비롯 되었습니다. 청주경씨는 5세조 경의(慶儀)가 태종조 청백리에 녹선된 것을 본받아 후손들의 품성(稟性)이 청직(淸直)하고 숭조목족(崇祖睦族)의 정신이 지극한 단성단본(單性單本)의 명문 성씨입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에서 인용) .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청주경씨의 인구는 12,474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JTyNTvW14Go9XtN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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