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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청산 정(鄭)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5.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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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청산 정(鄭)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청산 정씨
성씨 정(鄭)
작품명 미래로의 번영
조각가 박대규
조형물번호 216

먼저 청산정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조선 개국공신인 정금강 원조와 정운결 1세조의 역사설을 배경으로 비상의 날개를 추상형태로 상징하여 진취적 기상을 표상하였습니다. 세 면의 조형적 형태는 과거, 현재, 미래로 향하는 청산정씨 문중의 번영을 형상화 하였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청산정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청산정씨(靑山鄭氏)는 조선개국공신이며, 의정부 좌의정을 역임하고, 청산부원군에 봉군되어 정원공의 시호를 받은 정금강(鄭錦綱)을 시조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본관을 청산(靑山)으로 하였습니다. 그후 선계가 실전되어 사헌부 대사헌을 역임한 정운결(鄭雲潔)을 대사헌공파 중시조 1세조로, 병조참의를 역임한 정유항(惟恒)을 참의공파 중시조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본관 청산은 본래 신라 굴산현이었으나 고려 태조23년에 청산현으로 개칭하여 상주(商州)에 속하게 되었으며, 1414년 황간현과 합하여 황천현, 1895년 지방제도 개정으로 인하여 청산군으로 승격하였다가 1914년 군.면 통폐합으로 충청북도 옥천군(沃川郡)에 편입되었습니다.

주요 인물은 현감(縣監)을 지낸 정희한(希漢), 정휘(輝), 정원필(元弼), 주부(主簿) 정필(弼), 목사(牧使) 정익( 翼), 교위 정여해(汝楷), 부사과 정문우(文祐), 판관 정효성(孝誠)등 많은 관직자를 배출하였으며, 과거급제 자는 인조 14년(1636) 무과 정세민(世民), 인조 15년(1637) 무과 정응길(應吉), 현종 13년(1672) 무과 정화제(華齊)가 있습니다.

대사헌공파는 낭천현감을 지낸 2세 정희한의 代부터 강원도 춘천지역에 후손들이 터를 정하고 세거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후손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지역입니다. 참의공파는 봉화현감을 지낸 4세 정원필(元弼)의 代부터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소농리, 익산군 팔봉면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습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에서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청산정씨의 인구는 4,527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cwQkbn83rZXtqz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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