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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진주 류(柳)씨(차달)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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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진주 류(柳)씨(차달)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을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진주류씨(차달)
성씨 류(柳)
작품명 버드나무
조각가 문윤형
조형물번호 105

먼저 진주류씨(차달)이류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한국 민화의 형식은 모자란 듯 넘쳐나는 여유로움과 정감을 줍니다. 단순함과 투박한 형태적인 요소를 강조하여 표현하였고 고 미술에서 발견되는 단위면적당 정의 개수를 달리하여 질감과 색의 변화를 의도합니다.

作帝建賚七寶將還 龍女曰 父有楊丈與豚勝 七寶 ?請之[고려사 세계 권 제5 뒤쪽] 용녀 왈 “아버지에게 버드나무 지팡이와 돼지가 있는데 그것은 칠보보다 더 귀중한 것이니 그것을 청하십시오.” 하였습니다.

고려 태조의 탄생신화에 근거한 버드나무 지팡이의 버드나무를 성으로 하사한 것은 건국의 공신으로서 왕건의 애정이 각별하였다고 볼 수 있죠. 진주 류씨의 근원이 고려 건국설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 버드나무를 소재로 선택하여 진주 류씨의 상징물을 만들었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진주류씨(차달)이류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류씨 성(姓)의 기록이 처음 보이기 시작한 것은 후삼국시대 말 고려 개국 전후입니다. 시조는 고려 개국 삼한공신(三韓功臣) 대승공 류차달(大丞公 柳車達)입니다.

7世 문간공 류공권(文簡公 柳公權) 8世 상서공 류언침(尙書公 柳彦琛) 9世 밀직사 류순(密直使 柳淳)으로 이어졌으며 10世에 판시사 진산군 류인비(晋山君 柳仁庇)께서 이봉 득관(得貫)하여 진주류씨의 중시조가 되었습니다.

손자 익양공 류혜방(翊襄公 柳惠芳)과 안간공 류혜손(安簡公 柳蕙孫) 이후에 자손이 크게 현달하고 번창하여 이판공파(吏判公派), 북부령공파(北部令公派), 시윤공파(寺尹公派), 안간공파(安簡公派)로 대별되며 충효전가 청백유업을 계속 이어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제학 2인, 청백리 4인, 상신 2인, 공신녹권이 8인, 증시(贈諡) 17인, 등단장신(登壇將臣) 4인, 병마절도사 30인, 삼도수군통제사 10인, 수군절도사 27인, 목사부사(牧使府使) 86인입니다. 문과급제 80인, 무과급제 380인이며, 육조판서와 삼사(三司)의 대간(臺諫), 승지(承旨), 지방 목민관, 원종공신(原從功臣) 등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국난이 있을 때 마다 진충보국(盡忠報國)의 공신 충신열사가 나왔으며 윤리 기강이 해이 할 때 마다 효자 열녀가 이어져 내려와 정려를 받은분 또한 많죠. 문장서화에 류진동 (柳辰仝), 류혁연 (柳赫然)이 있으며 3대묵죽주가(三大墨竹晝家)에 오른 류덕장 (柳德章)과 문통집(文通集) 언문지(諺文誌)를 남긴 류희(柳僖) 등이 드러난 분이죠.

유림으로부터 도덕군자로 추앙받는 학자로서 경국제세를 논하고 학문에 전념한 은일(隱逸)과 명현 또한 많으니 문강(文講) 무습(武習)하여 잠영진신(簪瓔縉紳) 무반벌족이 끊이지 않아 오늘날에도 입법 사법 행정부와 경제계 문화계 언론계 등 각 분야에서 중추역할을 하고 있는 기라성 같은 후손이 많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제사로서 그 은혜를 기리는 추원보본(追遠報本)에 뜻을 두어 선대유업의 현양 사업과 활기찬 미래 창조의 후학 인재 육성에 뜻을 가지고 진산(晉山) 장학회를 결성하여 1년에 200명의 대학생에 장학금을 수여하며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는 동량을 키우고 있습니다.

종원이 적은 인구수에 비해 우뚝하고 빼어난 굴지의 벌렬화족 가문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으니 아! 훌륭하도다. 명가의 후예로서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은 자긍심을 가지고 멸사봉공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국가와 사회에 헌신 봉사하면서 인화단결 숭조목종(崇祖睦宗)의 숭고한 뜻을 이 빗돌에 새겨 한밭의 명승지 뿌리 공원에 세워 후손과 함께 천추만세에 영원히 남겨질 것입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68tTarv1KKKJZ2T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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