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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상주(상산) 박(朴)씨 문중의 유래를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상주상산 박씨
성씨 박(朴)
작품명 문중(門 中)
조각가 박대순
조형물번호 142
먼저 상주(상산)박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성씨 박(朴)
작품명 문중(門 中)
조각가 박대순
조형물번호 142
먼저 상주(상산)박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상주(상산) 박씨 성씨조형물 작품은 “문중”으로 한자의 “門”자를 형상화하여 “숭조(崇祖)와 목족(睦族)”을 좌우의 음각한 두 개의 기둥이 솟구쳐 올라 가문을 이루는 門을 형상화 하였습니다.
가운데 오석은 문중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결집된 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가운데 ‘中’을 형상화 하였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운데 오석은 문중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결집된 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가운데 ‘中’을 형상화 하였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상주(상산)박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신라 54대 경명왕(景明王)의 여덟 아들 중 두번째로 분봉(分封)된 박언창(朴彦昌)이 사벌대군(沙伐大君)에 봉해지고 사벌주(沙伐州)를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아 문호가 열리게 되어 언창을 관조(貫祖)로 모시고 있습니다. 사벌주가 고려초에는 상산(商山)으로, 조선조에는 상주(尙州)로 개칭되면서 본관을 상주(상산)이라 하게 되었죠.
신라말 당시 사벌주는 후백제와의 각축장이 되어 경명왕이 아들 언창을 사벌방어장으로 임명하자, 그는 군사를 강화하여 후백제 군사와 대항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라의 국세가 급격히 쇠약해져 여러 지역이 함락되고 사벌주가 고립상태에 빠졌습니다.
그에 따라 박언창은 서기 918년(경명왕 2년) 자립으로 사벌국을 세워 10여 년간 고군분투 하던 중 서기 929년(경순왕 3년) 낙동강을 도하하여 급습해 온 후백제의 견훤 군사를 맞아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항전 13년, 재위 11년만에 패망하게 되었죠.
그 후 많은 후손들이 고려와 조선조에 참지정사, 좌의정, 대제학, 판서 등의 높은 벼슬길에 올라 명문가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고, 상주시 소재 사벌국왕릉(陵)은 지방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어 있어 매년 능제(陵祭)를 행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상암공파(商巖公派-中始祖 安義), 판서공파(判書公派-中始祖 安禮), 예판공파(禮判公派-中始祖 安智), 정숙공파(貞肅公派-中始祖 安信), 찬성공파(贊成公派-中始祖 侶), 판원사공파(判院事公派-中始祖 文有) 6개파의 2만 5천여 후손들이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어, 왕가(王家)후손으로서 명예와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상주(상산)박씨는 본관 상주 25,238명, 본관 상산 7,916명 합계 33,154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959uh3HjNmuIaHy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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