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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무송 윤(尹)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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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무송윤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무송 윤씨
성씨 윤(尹)
작품명 雄飛(웅비)
조각가 천종권
조형물번호 138

먼저 무송윤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조형물의 상징은 무송윤씨의 찬란한 내력을 형상화 하였습니다. 양팔을 뻗어 우주를 끌어안은 듯한 내가의 기둥은 대사성공파, 장령공파의 힘찬 기상을 표현했으며 중앙 상단의 원형 우주는 세상 만물의 모든 기운과 선조의 빛나는 얼을 담아냈습니다.
기둥에 살아있는 듯 담겨져 있는 푸른 소나무의 기백은 무송윤씨 미래를 말해주며 사철 푸르름은 자손의 영원한 번영을 의미한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무송윤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무송윤씨 시조 윤양비(尹良庇)는 고려 예종조에 하남도 무송현의 현리로서 향공에 급제하여 “보승낭장”을 지냈습니다.
묘소는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성남리 산60-1번지에 소재해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15일 전국에서 후손들이 모여 사우에서 세사를 봉행합니다. 윤해(諧)는 정헌대부 국학대사성 문한사학으로 대사성공파 중시조입니다.

윤의(誼)는 문과에 급제, 장령을 지냈고 장령공파의 중시조입니다. 묘소는 두 분 모두 실전하여 시조공 묘하에 설단하고 매년 세사를 시조공과 같이 모십니다. 조선조에는 상신 1명, 대제학 1명, 청백리 1명, 공신 3명, 문과급제 12명 중 5명이 장원급제, 무과에 3명이 등과했습니다.

고려말 율정(栗亭) 윤택(澤)은 수재과에 장원하여 공민왕 때 중대광보국숭록대부 및 정당문학에 오르고 시호는 文貞이고 “율정문집”이 있습니다. 윤충보(忠輔)는 고려말 태조가 개국하여 여러 차례 부름을 받았으나 “충절의”를 지켜 벼슬길에 나가지 않아 “려강처사”라는 사호를 받았죠.

세종 때 문도공(文度公) 윤회(淮)는 예문관대제학, 대사성 전문형을 지내고 문성(文星)과 주성(酒星)으로 이름을 남기며 “조선지리지”를 편찬하고 “청향당” 문집이 있습니다. 공호공(恭胡公) 윤사익(思翼)은 중종조 좌랑을 거쳐 중추부사에 이르고 지경연 춘추관사로 “청백리(淸白吏)”에 선입되었다.

상신중 한명으로 문헌공(文憲公) 윤자운(子雲)은 문과에 장원하여 고려사를 편찬하고 예종조에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성종조에 영의정에 오르며 좌리공신 1등으로 무송부원군에 진봉되었습니다.

석정 윤세주(世冑)는 혁명열사로 3.1 운동시 밀양에서 독립만세를 주도하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조선의용대를 조직하여 만주태행산 전투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하엿고 정부에서“대한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청사에 빛나는 훌륭한 덕망과 학식이 높은 선조들께서 현명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지고한 “얼”과 “삶”의 근본을 보여주었으니 마음에 새겨 무송 윤씨 번창의 길로 올곧게 전진하고자 합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무송윤씨의 인구는 14,572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RhlF8BoO2dTl86Q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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