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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신천 강(康)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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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신천 강(康)씨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신천강씨
성씨 강(康)
작품명 태양(太陽)을 향하여
조각가 남 철
조형물번호 131

먼저 신천강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신천강씨 조형물은 어른과 어린이가 두 팔을 태양을 향하여 높이 치켜든 모습으로 종중화합과 웅비를 표현하였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신천강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신천강씨(信川康氏)의 시조는 강호경(康虎景)공입니다. 공의 선계(先系)는 고조선조(古朝鮮朝)에 윤리를 교화한 훈로로 아버지 시호인 강숙(康叔)의 강(康)자로 사성받고 관정대훈공신(關鼎大勳功臣)에 올라 백성들로부터 교화성사(敎化聖師)라 칭송받은 강후(康侯)이며 득성조(得姓祖)가 됩니다.

강호경(康虎景)은 신라시대 분으로 진원(晉原) 경양리(景陽里)에서 탄생하고 호랑이의 보호가 있었다 하여 이름을 호경(虎景)이라 하였습니다. 호(號)를 성골장군(聖骨將軍)이라 하고 백두산으로부터 송악산(松嶽山)에 이르러 살았는데, 돌아가신 후에는 그 곳 사람들이 구룡산(九龍山 : 일명 聖居山)에 사당을 세우고 제향을 올렸다고 하죠.

공은 고려태조 왕건(王建)의 외가조상이 되므로, 고려태조는 그를 국조대왕(國祖大王)으로, 공의 손자 강보육(康寶育)을 원덕대왕(元德大王)으로 추존하였습니다.
후손들은 황해도 신천(信川)지방의 호족으로서 고려건국의 기반이 되었고 고려조에서 높은 벼슬길에 오른 분이 많았죠.

공의 14세손인 강지연(康之淵)이 문하시중에 오르고 신성부원군(信城府院君)에 봉해짐에 따라 후손들이 그를 중시조로 모시고 본관을 신천(信川)으로 정하였습니다.

또한 신천으로부터 분관되어 별관(別貫)으로 곡산(谷山), 재령(載寧), 안릉(安陵), 충주(忠州) 등이 있으며, 조선을 개국하고 태조(太祖)의 현비에 오른 신덕고황후〔神德高皇后 : 능호-정릉(貞陵)〕를 비롯하여 영의정을 지낸 강순(康純) 등 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명문거족의 후예답게 크게 번창하고 있습니다(문중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신천강씨의 인구는 52,945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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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공원에 건립된 문중의 유래비에 각자된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신천강씨대종회 홈페이지에 게재된 자료를 여기에 소개합니다.

<신천강씨의 유래>

먼저 강(康)씨의 유래에 앞서 강(康)자의 의미에 대해 궁구해보면 강(康) 자처럼 좋은 의미를 가진 자는 세상에 없을 것 같다. 康은 庚 자에 米를 조합한 글자다. 庚은 일곱 번째 천간으로 별을 의미하며 米는 쌀로써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따라서 강(康) 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뜻으로 평안 화목, 안락함을 상징하는 글자이니 이보다 더 좋은 성씨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 신천강씨의 비조는 주나라 무왕(武王)의 아우인 강숙(康叔) 공이다. 강숙(康叔) 공은 위(衛)나라 초대 왕으로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가 백모(伯髦) 공이다. 공은 아버지 강숙(康叔) 공을 계승하여 위나라를 통치했다. 공의 후손들이 바로 중국과 대만에 살고 있는 중화강씨다. 둘째 아드님은 중모(㑖髦) 공이다. 공에 대한 기록은 일주서 작낙해 편에 봉지를 받아 동으로 갔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이는 기자가 조선으로 나올 때 따라 들어왔다. 이때 중모공은 조선에 들어와 교화를 조성하는 등 훈로가 많았다. 기자는 이를 치하하여 관정대훈공신(關鼎大勳功臣)에 봉했다. 우리 강씨들은 강후(康侯-諱 중모(㑖髦) 공을 득성조로 모시고 있다.

득성조 강후(康侯-諱 중모(㑖髦) 공부터 67세까지 이어진 선계는 고조선부터의 강씨들의 선대 어른들로 확실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따라서 실질적인 신천강의 시조는 강후(康侯-諱 중모(㑖髦) 공의 68세인 성골장군 휘(諱) 호경(好景) 공이시다.

이 어른이 고려태조의 외 6대조이시니 공을 국조대왕(國祖大王)으로 부르고, 공의 손 보육(寶育) 공을 원덕대왕(元德大王)으로 추존되었다.공의 후손들은 황해도 신천을 중심으로 정착하여 황해도 지방의 토성으로서 고려조에서 크게 세력을 떨치고 살아왔다.

공의 14세손 고려문하시중(高麗門下侍中) 휘(諱) 지연(之淵)공이 고종을 호종하여 강화도 천도에 큰 공을 세웠다. 고종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신성부원군에 봉하고 신천을 식읍지로 하사하였다. 후손들은 지연공을 중시조로 모시고 본관을 신천으로 삼았다. 세월이 흘러 분관(分貫)되어 별관으로 곡산, 재령, 안릉. 충주, 승평이 있으나 한반도에 살고 있는 모든 康씨들은 공의 후손들이며 신천강씨이다.
<신천강씨대종회 홈페이지에서 발췌>

https://youtu.be/zIShGYE750Q?si=tK1FqDZ-L6boHM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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