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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전의 예안 이(李)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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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전의 예안 이(李)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전의 예안 이씨

성씨 이(李)

작품명 : 인경(仁敬)

조각가 : 천종권

조형물번호 : 130

 

먼저 전의 예안 이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전의이씨 조형물은 선조에 대한 그리움과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문중의 화합과 결속을 표상화 한 작품이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전의이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전의이씨의 시조 태사공은 전의 운주산 이성(李城)에서 출사하여,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남정할 때 헌책마수(獻策馬首)로 전쟁을 승리하였으며, 예절에 맞는 몸가짐으로 군주를 잘 보좌하여 통합삼한의 큰 공을 세웠습니다.

 

고려 태조로부터 이도(李棹)라는 이름을 하사 받고, 936년 고려개국 통합 삼한익찬이등공신에 책록되었죠. 벼슬은 삼중대광태사에 이르고 전산후(高麗開國統合三韓翊贊二等功臣三重大匡太師全山候) 작위를 수여했으며 성절공에 봉해졌습니다. 시조 이도(李棹)의 묘소는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을 자랑할 정도로 명당으로 알려져 있죠. 고려 문벌귀족 전의이씨를 창씨하여 그 가성이 천백 유년 동안 꽃다운 이름이 후세에 길이 전하였죠.

 

1256년 응양군 대장군 이천(李仟) 동암수 공이 수군 이백여명을 거느리고, 남도인 온수현(현 아산군) 전투에서 몽고병을 격파하고 포로가 된 남녀 백여명을 구출하였습니다. 735년이 지난 후 1992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건조한 해군 잠수함 제1호를 이천함(李仟艦)으로 명명하고 그 위훈을 다시 빛냈죠.

 

이천 장군은 세 아들을 두니, 장자에 이자원(李子原)의 자손들을 중심으로 한 대사성공파(大司成公), 차남 이혼(李混)이 예안백(禮安伯)에 봉해지면서 생긴 문장공파(文莊公派), 셋째 이자화(李子華) 자손들을 중심으로 한 전서공파(典書公派)로 갈립니다.

 

대사성공의 아들 예문관 대제학 문의공 이언충(李彦沖)은 문의공(文義公)파의 조가 되어 후손이 번연하였죠. 문장공의 손자 보문각 제학공 이익(李翊)은 예안(禮安)으로 본관을 옮겨 예안이씨의 조가 되어 조선 명문씨족으로 가성을 높였죠.

 

조선조에 이르러서 고려화벌 전의이씨는 그 오랜 빛나는 전통으로 세종대왕이 나라의 윤리강령 삼강오륜을 확립함에 즈음하여 선부 전서공의 증손 시효정공

이정간(李貞幹)에게 「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世守仁敬)으로 정려(旌閭)하였습니다. 그 후 고가 전통 세가인 전의, 예안이씨는 충효양전 청백절의한 조선조의 벌열이되었죠.

 

전의 이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88명을 비롯하여, 상신 5명, 대제학 1명, 공신 9명, 청백리 8명, 호당 4명, 시호(諡號)를 받은 인물 38명을 배출하였습니다.

전의, 예안이씨는 오늘에 이르도록 천년 세가로서 사해에 늠름하니 그 후손 천지강산 더불어 무궁하고, 명성 길이 빛나리라.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전의이씨의 인구는 164,189명, 예안이씨의 인구는 17,748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NEi31kO3gG4?si=quNgot7CfG5a2H_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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