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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신평 이(李)씨의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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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신평이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신평 이씨
성씨 이(李)
작품명 造形物의 特徵
조각가
조형물번호 133

먼저 신평이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신평이씨의 자긍심과 역사 깊은 문중 유래 등을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알리고자 “대전 뿌리공원”에 신평이문의 성씨 조형물을 세웁니다.

하단 삼각형의 여섯개 발은 솥정(鼎)의 안정과 6개파의 번성을 의미합니다. 중단 사다리꼴의 화강석 기둥은 창조와 번영을 의미하며, 상단 원형의 “공”은 문중의 화합과 돈목을 의미한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신평이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신평이씨는 백제시대 사평현(沙平縣) 호족 이인수(李仁 壽)의 후손입니다. 시조(始祖) 덕명(德明)은 시호(諡號)가 문간(文簡), 관직은 고려조 문하시랑평장사를 역임하고 퇴직후 낙향하여 여생을 보내고 졸(卒)하여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오곡리 숭학산 동록에 예장하였으며 매년 음 10월1일에 향사합니다.

시조 문간공(文簡公)은 고려조 신평현(新平縣)에 터전을 마련하고 본관을 신평(新平)으로 받아 세를 일으켜 그간 조정에 출사하여 문무(文武)로 헌신 봉사한 자취가 여러 문적사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문중의 자랑이죠.

세손의 번연으로 괴당공(槐堂公), 문정공(文定公), 사인공(舍人公), 문안공(文安公), 사재공(司宰公), 판서공(判書公)파로 분파, 대종(大宗)을 이루고 번성하여 전국 각지 면면 촌촌에서 번창해 나가는 문중임을 본 “대전 뿌리공원 성씨 조형물”에 새겨둡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신평이씨의 인구는 39,872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uccZp-IKJ9uwwL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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