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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신창 표(表)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신창 표씨
성씨 표(表)
작품명 창공(학)
조각가 김 왕 현
조형물번호 64
먼저 신창표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신창 표씨
성씨 표(表)
작품명 창공(학)
조각가 김 왕 현
조형물번호 64
먼저 신창표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학은 장수하며 청렴결백한 동물이죠. 표씨 화수회에서는 후손이 자손만대 건강하게 영원히 번영하자는 뜻과 청렴결백한 선비가 많이 배출되어 조국에 공헌하자는 뜻을 겸하여 학을 선택했습니다. 높은 창공을 유유히 날으는 모습에는 학의 늠름한 품성과 아름다운 자태를 표현하고자 날개를 펼치며 허공을 날으는 두마리의 학이 태양과 구름을 배경으로 나는 모습을 선정하였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신창표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표씨(表氏)는 신창(新昌) 단일본이며 시조는 송(宋)나라때 후주(後周)의 이부상서 표대박(表大撲)으로서 절의를 지켜 고려로 망명 귀화하여 온창현(溫昌縣) 신창현(新昌縣)에서 정주하게 되었습니다. (고려 광종11년) 250년 뒤 중시조 표인여(表仁呂) 해관지후합문지후 평장사 (解官祗侯閤門祗侯 平章事)는 고려말 충숙왕때 좌리공신으로 온창백 (溫昌伯 現 牙山郡新昌 竹山 1, 2里)으로 오게되어 표씨들이 사실상 시조로 모시며 신창을 본관으로 삼은 효시(嚆矢)입니다.
표씨(表氏)는 조선조에 10여명의 문과급제를 배출하여 5세손 표계(表繼)는 세종때 양덕현감(陽德縣監)과 상주 유학교수관을 지냈으며 별세후 자헌대부 이조판서에 증직되었습니다. 세 아들이 과거에 급제하여 위로 표연원은 석성현감(石城縣監) 표연한은 병마절도위 성천부사(兵馬節都尉 成川府使)를 지내고 표연말(表沿沫)은 홍문관제학 겸 예문관제학을 연산군(燕山君)때 대사성과 승지원 우승지와 가선대부 이조참판 겸 동지중추부사를 지냈습니다.
후일 중종(中宗4年) 제문(祭文)을 직접 지어 추모장례를 치르게 하고 상주군함창의 임호서원을 건립하고, 함양군의 구천서원, 의령의 숭보사에 배향 되고 이조판서를 가증하였습니다. 표연말은 세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 표준(準)은 사헌부 감찰, 차남 표빙(表憑)은 중종조에 홍문관 직제학 도승지, 셋째 표중(仲)은 능참봉 부사를 지내는 등 3대가 문과에 급제하여 가문을 빛냈습니다.
또 전라도사를 거쳐 울산부사를 지내고 우의정과 의정부 영의정(議政府 領議政)에 추증된 표빈(表贇)은 선정을 베풀어 청백리상을 받았으며 울산에 선정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의 아들 표헌(表憲)은 선조 때 어전통사(御前通事)로 명나라 사신을 통역과 재치로 왕이 곤경을 면케하였고 임진왜란 당시 선조(宣祖) 를 조선(朝鮮)에 남을 것을 계청(啓請)한 공으로 선무원종 1등공신에 추훈되었습니다.
표정노(表廷老) 지중추부사 대호군은 광해군때 선친에 못지 않은 명역관으로 원접사에 역관이 되어 명나라 사신을 시(詩)로 오만방자한 태도를 공손케 만들었습니다. 신창표는 충효, 절의, 정도의 선조유업 정신을 계승한 후손답게 항상 나라발전에 영원한 초석이 되고저 전종원의 뜻을 모아 이 조형물을 건립합니다.
(발췌인 21세손 표현오) 신창표씨 전국화수회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신창표씨의 인구는 28,894명이었습니다.
표씨(表氏)는 조선조에 10여명의 문과급제를 배출하여 5세손 표계(表繼)는 세종때 양덕현감(陽德縣監)과 상주 유학교수관을 지냈으며 별세후 자헌대부 이조판서에 증직되었습니다. 세 아들이 과거에 급제하여 위로 표연원은 석성현감(石城縣監) 표연한은 병마절도위 성천부사(兵馬節都尉 成川府使)를 지내고 표연말(表沿沫)은 홍문관제학 겸 예문관제학을 연산군(燕山君)때 대사성과 승지원 우승지와 가선대부 이조참판 겸 동지중추부사를 지냈습니다.
후일 중종(中宗4年) 제문(祭文)을 직접 지어 추모장례를 치르게 하고 상주군함창의 임호서원을 건립하고, 함양군의 구천서원, 의령의 숭보사에 배향 되고 이조판서를 가증하였습니다. 표연말은 세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 표준(準)은 사헌부 감찰, 차남 표빙(表憑)은 중종조에 홍문관 직제학 도승지, 셋째 표중(仲)은 능참봉 부사를 지내는 등 3대가 문과에 급제하여 가문을 빛냈습니다.
또 전라도사를 거쳐 울산부사를 지내고 우의정과 의정부 영의정(議政府 領議政)에 추증된 표빈(表贇)은 선정을 베풀어 청백리상을 받았으며 울산에 선정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의 아들 표헌(表憲)은 선조 때 어전통사(御前通事)로 명나라 사신을 통역과 재치로 왕이 곤경을 면케하였고 임진왜란 당시 선조(宣祖) 를 조선(朝鮮)에 남을 것을 계청(啓請)한 공으로 선무원종 1등공신에 추훈되었습니다.
표정노(表廷老) 지중추부사 대호군은 광해군때 선친에 못지 않은 명역관으로 원접사에 역관이 되어 명나라 사신을 시(詩)로 오만방자한 태도를 공손케 만들었습니다. 신창표는 충효, 절의, 정도의 선조유업 정신을 계승한 후손답게 항상 나라발전에 영원한 초석이 되고저 전종원의 뜻을 모아 이 조형물을 건립합니다.
(발췌인 21세손 표현오) 신창표씨 전국화수회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신창표씨의 인구는 28,894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2SKwJHPlHhczepI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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