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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나주 최(崔)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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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나주최씨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나주 최씨
성씨 최(崔)
작품명 인류의 평화
조각가 박 기 환
조형물번호 66

#나주최씨

먼저 나주최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에서 좌대 위는 배를 상징하며 배위 조형물은 우주를 향하여 전진과 인류의 평화와 옛것과 윗 사람의 공경으로 한데 뭉쳐 종친의 발전을 표현하였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나주최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나주(螺舟)로 관(貫)한 최씨(崔氏)는 탐진최씨(耽津崔氏)의 생원 최준량(諱浚良)의 6세손인 부위공 최정원(井元)을 시조로 삼고 부위공(副尉公)의 삼남인 진사 최택(澤)의 5세손으로 참판인 최번(蕃)의 삼남중 장차(長次) 형제는 탐진(耽津)으로 계대하고 있으나 삼남인 증참공(贈參公) 최용운(龍雲)을 기일세(起一世)하여 나주(羅州)로 분관이적(分貫移籍)하였습니다.

시조인 부위공(副尉公) 손자인 금남공 최부(溥)께서 나주 출생으로 조선성종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호당에 들어 양가독서를 한후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등의 편찬에 참관하는 등떨쳤으므로 그의 후손들이 금남공(錦南公)의 前出生居地인 나주(羅州)로 분적하여 세계를 면면이 이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충남 청양과 서산 보영 등 명지에서 산거하고 있으니 무려 수천백인입니다.

다만 금남공(錦南公)은 추쇄경차관(推刷敬差官)으로써 제주(濟州)에 갔다가 부친상을 듣고 바다를 건너다가 풍랑을 만나 중원태주(中原台州)에 정박하였다가 반년 뒤에 본국에 돌아와서 어명으로 표해록(漂海錄)을 지었으니 이는 세계적으로 최초 있는 일로써 그의 해박한 문성을 천하에 떨쳤습니다.

이는 오국(吾國)에 자랑이며 오문(吾門)에 큰 광영이므로 이에 조각상을 세워 기리는 것이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나주최씨의 인구는 3,608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VhaNg3SegV0AwgL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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