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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능성 구(具)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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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능성 구(具)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능성구씨
성씨구(具)
작품명생(生)의 찬미(贊美)
조각가홍 승 남
조형물번호56

먼저 능성구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선대와 후대를 상징하는 두 개의 원기둥은 곧고 바르게 끊임없이 성장하는 강한 생명력의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죠. 능성구씨 문중의 원대한 역사를 이루어 문중의 안정과 화합을 지표로 합니다. 또 능성구씨 휘장 중심부의 다섯 원은 삼강오륜을 뜻하는 具자 도안이고 양쪽 월계수 잎은 현존파를 양쪽 꽃망울은 무후파를 상징합니다.

그럼 이제 능성구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능성구씨는 고려 고종11년(1224)에 시조의 시현으로 알려진 성씨로 약 780년을 연이어온 국내에서 두드러진 씨족입니다. 시조고(始祖考)는 고려때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벽상삼한삼중대광 검교상장군(壁上三韓三重大匡檢校上將軍)을 지낸 구존유(存裕)이고 시조비는 신안주씨이니 송나라 한림학사 청계공(淸溪公)의 따님이요. 회암부자주문공 주자(朱子)의 현손녀이다.

시조 구존유의 사적이 민멸(泯滅)되어 알 길이 없으나 주씨(朱氏)의 세보(世譜)를 상고해보니 청계선생(淸溪先生)이 송(宋)나라 가정갑신 1224年에 권신들의 실정으로 나라가 멸망하게 됨을 보고 칠학사와 더불어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에 왔다고 하니 가정갑신(嘉定甲申)은 송(宋)나라 영종(寧宗) 17年이요 고려(高麗) 고종(高宗) 11年이다.

그 당시(當時) 시조도 장인(丈人)인 청계공(淸溪公)을 따라온 것으로 추상되며 현리(縣吏) 운운(云云)은 아마도 처음 도착하여 은덕생활을 할 때였으리라 사료된다. 그의 아들 구민첨(民瞻)은 평장사(平章事)에 올랐다. 구민첨의 아들 연은 판관(判官) 증좌정승(贈左政丞)에 추증되었고, 구연은 일곱 아들을 두었으며 모두 귀현(貴顯)했다.

능성구문은 득성이래 문무대과의 급제와 생진소과의 합격이 780명에 이릅니다.
왕후(王后)등 훈천과 두문동현인 등 위인과 청백리등 명현이 속출하였죠. 영의정을 비롯한 공경대부·수령방백 등 고관대작이 수없이 배출되었습니다. 근세에도 독립유공자를 비롯하여 정·재·관·문·예계(政·財·官·文·藝界)에 저명 인사들이 많아 가문을 빛내고 있죠.

능성구씨 가문의 현달과 함께 자손들이 번창하여 각기 관함(官啣)에 따라 파명을 구분하니 모두 11파(派)인데 그중(中)에 전서파(典書派)와 임천군사파(林川郡事派)는 불행(不幸)히도 무후(无后)되고 9파(九派)만이 더욱 번성하여져 훈업과 문장ㆍ충효ㆍ덕행이 울연히 국중의 망족으로 손꼽혔으며 현재 종인수는 약 20만명에 이릅니다.
 

https://youtu.be/RoqHjHSe0_I?si=a418Z1YCpfRKXv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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