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흥양 이(李)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7. 10.
728x90
오늘은 흥양 이(李)씨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흥양이씨
성씨 이(李)
작품명 旭日飛天(욱일비천)
조각가 최 영 근 (한남대학교 응용미술과 교수)
조형물번호 52

먼저 흥양이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조형물은 태양과 같이 빛나는 흥양이씨의 대동 단결과 화합을 다지며 선대조의 고귀한 정신을 받드는 뜻을 상징한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흥양이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흥양이씨 씨족의 연원(淵源)은 1149년(고려毅宗3년 己巳)에 고려조의 상서(尙書)를 역임하신 이언림(李彦林) 시조에서 발원하여 1331년(고려忠惠王 1年 辛未) 흥양군(興陽君)을 수봉하고 관향을 흥양(全南高興)으로 하사 받은 제7세조 이길(李吉) 선조 이래 그 후예들은 문무(文武)를 비롯하여 각 분야에 빛나는 업적을 많이 남기고 국내외에서 흥양이씨임을 자부하며 창성 발전하고 있습니다.

충효에 귀감이 되는 역대 선조 중에서 제3세조 위위공 이양승(李陽升)은 거란족의 침략을 격퇴한 무공으로 해동명장전(海東名將傳)에 그 용맹을 길이 남기게 되었고 제9세조 이은(李垠)은 대사헌(大司憲)을 역임하면서 충성을 다하였죠.

제10세조 이언(李堰)은 남원부사와 전주부윤(全州府尹) 재임 시에 청렴결백한 선정을 베푼 공으로 청백리(淸白吏) 양경(良敬)이라 시호(諡號)를 받았죠. 제15세조 이준(李埈)은 학식과 덕망이 뛰어나고 국가에 기여한 공이 지대하여 이조판서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 문간(文簡) 시호를 받아 당대의 제1인자라는 칭송을 받았습니다.

자헌대부 호조판서를 역임한 제12세조 이배근(李培根)의 아들 지평곤 이걸(李傑)도 문과에 급제하여 애국애민의 선정을 베푼 공으로 김천시 남면 초곡리의 임야를 하사받아 개령파의 선영(先瑩)으로 만들었습니다. 제16세조 자헌대부 호조판서 이인충(李仁忠)은 무과에 급제하여 진충보국의 공을 크게 세워 세인의 추앙을 받았죠.

제17세조 만송당공 이인경(李寅卿)은 무과급제로 훈련원정을 역임하면서 임진왜란 이괄의 난 정묘호란 등에 참전하여 외적과 역적을 유감없이 무찔러 뛰어난 충절과 기개로 당세 제1의 용장으로서 원종공신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제19세조 가선대부 병조참판 두천공 이만번(李晩蕃)과 자헌대부 예조판서 두촌공 이만경(李晩景) 형제는 정희량의 반란을 평정하는 대공을 세웠으며 특히 두촌공(斗村)은 출전지 효자(出天之孝子)였기에 정려(旌閭)를 하사받아 충효정신을 당세에 고양하였죠.

서원에 봉향된 다섯분 선조들 가운데 양경공 이언(李堰)은 군위 문양서원에, 월간공 이전(李㙉)은 상주 옥성서원에 배향되었죠. 그리고 두촌공 이만경(李晩景)은 무주 죽림서원에, 은와공 이인지(麟至)는 금산 석포서원에 배향되었으며, 문간공 이준(李埈)은 은지 옥성서원과 풍기 우곡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

이밖에 정려를 하사받은 선조와 유림대표로 소수(疏首)를 하신분이 여러분이며 주옥같은 문집과 국보적인 사료도 그 수가 많습니다. 특히 흥양이문(李門)의 지정문화재 8종 중에는 형제급난도(兄弟急難圖)와 주서절요주(朱書節要주)가 뛰어나 후손들이 긍지를 높이 갖고 있죠.

이처럼 흥양이문(李門)의 후예들은 선조들의 충효정신, 선비정신 고매한 학행 등을 면면히 이어받아 인륜대도(人倫大道)를 지켜온 명문의 씨족입니다. 이제 후손들이 지극한 정성으로 숭조(崇祖) 애종(愛宗)하는 마음을 굳게 다지면서 선조의 유덕을 만세에 길이 전하고자 그 연혁을 간추려 유래비에 새겨둡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흥양이씨의 인구는 22,784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tx_wDMd4i4XQrl48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