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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청주 한(韓)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보겠니다. 함께하시죠.
청주한씨
성씨 : 한(韓)
작품명 숭조
조각가 : 천종권
조형물번호 : 37 (2019.9.28.)
먼저 청주한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청주한씨는 기자조선에서 기원하는바 역사적으로 가장 오랜 성씨이다. 이에 중앙의 로고를 중심으로 선대(좌측)와 후대(우측) 만남이 서로 공존하며 숭조 돈목함을 상징하고 있죠. 상단은 떠오르는 태양처럼 가문의 영원한 번영을 조형적으로 표상화 하였다고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청주한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청주한씨의 유래는 후조선 (後朝鮮)인 기자조선(箕子朝鮮)에서 기원합니다. 마한(馬韓) 원왕(元王)은 우평(友平), 우량(友諒), 우성(友誠) 세아들을 두었다. 나라가 쇠퇴하자 우평은 고구려(高句麗)에 입사(入仕)하여 북원선우씨(北元鮮于氏)가 되고, 우량은 신라 (新羅)에 입사하여 상당한씨(上黨韓氏) 즉 청주한씨가 되었고, 우성은 백제(百濟)에 입사하여 덕양기씨 (德陽奇氏)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한씨는 모두 기자(箕子)의 후예가 되는 것이죠.
기자는 은(殷)나라의 종실로서 주왕(紂王)의 숙부가 된다. 주왕이 잔인하고 포악하여 국정이 쇠퇴함으로 주나라 무왕이 이를 토멸하고, 기자(箕子)에게 치국하는 대도(大道)를 청문하기로 홍범(洪範)을 자문하여 주고 의리상 신복이 될 수는 없다하여 고조선(古朝鮮)에 망명하였습니다.
때마침 단군조선이 종말을 고하게 되자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후조선(後朝鮮)을 건국하고 예의로 교화하여 예의군자국(禮義君子國)이 되었다고 하죠.
청주한씨 시조 한 란(韓 蘭)은 지금의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난곡리에서 탄생하여 향학을 일으켰습니다.
청주 방정리에 무농정(務農亭)을 세우고 농업을 권장하여 마침내 부농을 이루었는데 이때에 왕건이 고려를 창업하는 공을 세워 개국공신이 되었으니 벼슬은 삼중대광 태위(三重大匡 太尉)이다.
천지는 신묘한 위광으로 강산의 기이함을 만들고 영웅의 자품을 타고나서 나라의 훈업을 이루었으니 한 란(韓 蘭) 그의 시호는 위양(威襄)이라 하였다.
속리산맥을 타고 내려와 황간 땅에 이르러 우뚝 솟은 지장영봉은 사위(四圍)를 거느리고 멀리 백리에 뻗쳐 영기가 모였으니 이곳에서 당대의 위인 한 란(韓蘭)이 탄생했다.
옛부터 전하는 말에 의하면 태조가 견훤을 정벌하려 청주 고을에 당도하자 태위공께서 군례를 갖추고 이를 맞이하여 창고에 비축한 곡식을 풀어 10만 군사를 배불리 먹이고 참전하여 전공을 세워 고려 왕조의 터전을 다졌다고 한다.
*청주한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315명, 상신 12명, 공신 24명, 대제학 1명, 왕비 6명을 배출했다.
성씨 : 한(韓)
작품명 숭조
조각가 : 천종권
조형물번호 : 37 (2019.9.28.)
먼저 청주한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청주한씨는 기자조선에서 기원하는바 역사적으로 가장 오랜 성씨이다. 이에 중앙의 로고를 중심으로 선대(좌측)와 후대(우측) 만남이 서로 공존하며 숭조 돈목함을 상징하고 있죠. 상단은 떠오르는 태양처럼 가문의 영원한 번영을 조형적으로 표상화 하였다고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청주한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청주한씨의 유래는 후조선 (後朝鮮)인 기자조선(箕子朝鮮)에서 기원합니다. 마한(馬韓) 원왕(元王)은 우평(友平), 우량(友諒), 우성(友誠) 세아들을 두었다. 나라가 쇠퇴하자 우평은 고구려(高句麗)에 입사(入仕)하여 북원선우씨(北元鮮于氏)가 되고, 우량은 신라 (新羅)에 입사하여 상당한씨(上黨韓氏) 즉 청주한씨가 되었고, 우성은 백제(百濟)에 입사하여 덕양기씨 (德陽奇氏)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한씨는 모두 기자(箕子)의 후예가 되는 것이죠.
기자는 은(殷)나라의 종실로서 주왕(紂王)의 숙부가 된다. 주왕이 잔인하고 포악하여 국정이 쇠퇴함으로 주나라 무왕이 이를 토멸하고, 기자(箕子)에게 치국하는 대도(大道)를 청문하기로 홍범(洪範)을 자문하여 주고 의리상 신복이 될 수는 없다하여 고조선(古朝鮮)에 망명하였습니다.
때마침 단군조선이 종말을 고하게 되자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후조선(後朝鮮)을 건국하고 예의로 교화하여 예의군자국(禮義君子國)이 되었다고 하죠.
청주한씨 시조 한 란(韓 蘭)은 지금의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난곡리에서 탄생하여 향학을 일으켰습니다.
청주 방정리에 무농정(務農亭)을 세우고 농업을 권장하여 마침내 부농을 이루었는데 이때에 왕건이 고려를 창업하는 공을 세워 개국공신이 되었으니 벼슬은 삼중대광 태위(三重大匡 太尉)이다.
천지는 신묘한 위광으로 강산의 기이함을 만들고 영웅의 자품을 타고나서 나라의 훈업을 이루었으니 한 란(韓 蘭) 그의 시호는 위양(威襄)이라 하였다.
속리산맥을 타고 내려와 황간 땅에 이르러 우뚝 솟은 지장영봉은 사위(四圍)를 거느리고 멀리 백리에 뻗쳐 영기가 모였으니 이곳에서 당대의 위인 한 란(韓蘭)이 탄생했다.
옛부터 전하는 말에 의하면 태조가 견훤을 정벌하려 청주 고을에 당도하자 태위공께서 군례를 갖추고 이를 맞이하여 창고에 비축한 곡식을 풀어 10만 군사를 배불리 먹이고 참전하여 전공을 세워 고려 왕조의 터전을 다졌다고 한다.
*청주한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315명, 상신 12명, 공신 24명, 대제학 1명, 왕비 6명을 배출했다.
https://youtu.be/5aFsACl6nw8?si=wEdk16wTOlfx5w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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