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단양 우(禹)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단양우씨
성씨우(禹)
작품명
조각가박 덕 인
조형물번호36
먼저 단양우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자손들이 손에 손잡고 화합과 우의를 다지며
뿌리와 줄기처럼 굳건한 기상위에 둥근 잎새와
산은 넓은 창공을 향한 높은 이상을 갖게 하는
뜻이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단양우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우씨는 본관이 단양(丹陽)으로 단일 본이며 시조는 우현(玄)이다. 고려 때 향공진사로서 호장을 지냈고 시조의 5대손인 우중대(仲大)는 고려 문하시중을 지냈죠.
아들 5형제가 모두 대과급제하였으나, 장남 우천규(天珪) 삼남 우천석(天錫) 선조의 자손만이 이어 내려와 우씨가문 모두가 두 선조의 후손들입니다. 우리나라 거유(巨儒)로서 성리학 시대를 열어 가는데 크게 이바지하여, 동방이학의 조종(祖宗)으로 불리고 있는 우탁(倬)은 역동 선생(易東先生)으로 널리 추앙 받는 훌륭한선조이죠.
우현보(玄寶)는 고려의 국운이 다하자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킨 두문동 72현의 한 분이며 청백리에 오르고, 영의정으로 추증되었습니다.조선 시대에 와서 대과급제하여 큰 벼슬에 오르신 선조가 많았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는데 공이 큰 분들 가운데는 1467년 이시애 난에서 공을 세운 우공, 1592년 임진왜란 때 원종공신 일등에 책록된 분이 우성전, 배선, 수,
치적, 경방, 준민이죠. 1636년 병자호란 때는 근왕병을 이끌고 적과 싸워 공을 세운 우상중, 우정, 중종때 우맹선은 병조판서를 지냈습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워 공을 세운 우동선, 재룡, 1909년 안중근 의사 등과 항일 운동을 전개하면서 이또오 (伊藤博文)를 암살한 후 잡혀 옥고를 치른 우덕순, 1919년 한국 유림독립운동 파리장서에 연서한 137명 중에는 우하교, 성동, 찬기, 경동, 하삼, 승기 분이 옥고를 치렀죠. 우병기 의사는 상해 임시 정부때 독립 자금을 송금한 것이 탄로되어 옥사 하는 등 구국 운동을 전개한 열사가 많습니다.
그리고 최근의 인물로는 세계적 육종 학자 우장춘 박사가 있죠. 선조들 가운데 훌륭한 일을 하여 서원에 배향된우탁, 길생, 현보, 배선, 신언, 남양, 유일, 현규, 적등 9명이 있으며, 특히 우탁을 배향한 사우(祠宇)가 열 곳에 이릅니다. 이외에도 많은 학자와 충신, 열사, 효자, 효부, 열부 및 열녀가 많이 있으나 일일이 열거하지 못 함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고려때는 우씨가문이 번창하여 8대성(八大姓)으로 명문 대가에 속했으나 조선 시대에 와서 멸문의 화를 입어 참사하신 분이 5명이 있고 그 수가 줄어 국내외에 널리 살고 있죠. 선조 가운데 묘소가 남아있는 가장 선대로는 시조의 5대손인 우중대(仲大) 선조의 묘소가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에 있습니다.
해마다 음력 10월1일이면 전국 각지에 살고 있는 후손들이 묘사를 봉행하면서 일가간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 조상을 숭배하는 정신을 기리고 있죠. 이번에 뿌리공원에 뜻깊게 세워진 유래비가 후손들의 뿌리찾기에 도움이 되도록 오래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에서 인용).
https://youtu.be/In_8MlvHGVg?si=lbo6ITHU5gcDCb2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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