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남양 방(房)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남양 방씨
성씨 방(房)
작품명 화합(和合)
조각가 이순덕
조형물번호 192
먼저 남양방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남양을 본관으로 둔 방씨는 중국(요나라) 단주에서 한반도(고구려) 남양에 정착하여 위훈미덕으로 계승발전과 번창을 주제로 공간성을 강조한 문(門)을 형용하였죠. 한쌍의 학(鶴)의 형상을 모티브로 현대적 기법인 기하학적 대칭 안정미를 조형적으로 형상화하였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남양방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방씨의 유래는 요순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선양을 받은 순임금이 요임금의 아들 단주(丹朱)를 방국(房國)에 봉한 후, 단주의 후손들이 국명인 방(房)을 성으로 삼았습니다.
남양방씨의 비조(鼻祖)는 유애(遺愛), 자 준(俊)입니다. 비조 방준은 당(唐) 태종(太宗)을 도와 이른바 ‘정관(貞觀)의 치(治)’를 이룬 문소공 현령(玄齡)의 아들로서 서기 643년 고구려 보장왕 때 서달 등 8학사의 한 분으로 동래(東來)하여 남양(南陽)에 정착하였습니다.
시조는 고려 개국에 참여하여 개국공신의 반열에 오른 방계홍(季弘)이고, 비조의 10세손이죠. 방씨는 고려조에서 삼한벽상공신 삼중대광보국, 금자광록대부 등 중추를 담당하였고, 통훈대부 방사량(士良)은 공양왕께 시무11조를 올려 시국의 폐단을 바로잡고자 하였으며 의서 향약집성방 저술에도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조선조에서도 방귀온(貴溫)은 조광조에 의거 현량과에 천거되어 참신한 인재등용문을 열었고, 방응현(應賢)은 조식과 이항 등과 교류하며 백성을 위한 학문과 교육에 힘쓴 일민(逸民)으로 남원 유천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
방명달(明達), 방명선(明選), 방원진(元震), 방원정(元井), 방원량(元亮)과 그 외 여러분들이 병란에 의병을 모집하여 결연히 싸웠고 방원진은 시조 애련곡(愛蓮曲)도 남겨 남원시민공원에 시비가 세워졌죠.
방씨는 한림공파 등 7파로 분파되어 전국에 3만여 명이 살고 있으며 비조의 사우와 시조이하 9위의 합동봉사단을 화성 마도면에 모시고 있습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남양방씨의 인구는 27,454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0CoPmbFM3SRziF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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