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학성 이(李)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학성 이씨
성씨 이(李)
작품명 학성이씨의 기상
조각가 이채국
조형물번호 191
먼저 학성이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학성이씨는 조선 세종 때 정치, 문화, 경제 등 여러 분야에 많은 공을 세은 충숙공 이예(李藝)를 시조로 합니다. 상부의 원은 문중의 단합과 화합을 상징하며 문화와 경제 도입에도 선구적 역할을 하였으며, 일찍이 세계를 향한 우리 선조의 자부심을 표현하였죠.
학은 고고하면서 미래 지향적이며 더욱 발전하는 문중의 기상을 표현하였습니다. 돛과 파도는 어떠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으로 살아온 우리 문중의 기백과 삶을존중하는 의미로 표현하였죠.
이 조형물은 선대의 업적을 기리고 후손들이 가문의 영광과 자자손손 널리 발전하는 문중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비를 구성하였습니다.
그럼 이제 학성이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학성이씨鶴城李氏는 울산의 별호인 학성鶴城을 본관으로 한다. 시조는 학파鶴坡 이예(李藝) (1373-1445)이며 조선 전기의 외교관으로 벼슬이 자헌대부 지중추부사에 이르렀고 시호는 충숙(忠肅)입니다.
이예는 40여회 일본에 파견되어 여러 차례일본 국왕을 만나 외교현안을 협의한 조선 최초의 통신사(通信使)이죠. 그는 계해약조를 정약하여 왜구의 세력을 약화시켰고 문인제도를 확립하여 일본인의 조선 입국을 통제하였으며, 뛰어난 외교력으로 왜구에 납치된 우리 동포 667명을 구출하였습니다.
또한 조선의 선진문화를 일본에 전파 했으며 무쇠대포 도입과 병선(兵船) 개량 등 전력증강에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이러한 업적이 오늘날 재조명되어 문화관광부로부터 ‘2005년 2월 이달의 문화인물’ 외교통상부로부터 ‘2010년 우리 외교를 빛낸 인물’로 선정되었으며 울산의 문화공원과 서울의 국립외교원에 동산이 건립되었습니다.
이예의 충절과 애족정신을 이어받은 후손들은 임진왜란 당시 영남 동부지역 의병의 중심이 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울산 남창지역 3.1만세 운동의 선봉에 섰으며 오늘날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와 사회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학성이씨의 인구는 16,460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db7PWSvB93WeEM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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