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회덕 황(黃)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회덕 황씨
성씨 황(黃)
작품명 사랑으로
조각가 전자선
조형물번호 171
먼저 회덕황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회덕황씨 가문의 선조 때부터 사랑과 봉사의 정신을 중요하게 실천해 온 것을 모티브로 하여 조형적으로 표상화하였죠.
유래비 조형물의 중심부는 선조와 자손의 하나됨으로 이어지도록 화합을 나타냈죠. 사랑을 상징하는 상단부의 형상은 가문의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에 이르기까지의 사랑과 봉사를 뜻합니다.
중앙부의 구는 중심에서 뻗어져 나오는 생명력이 다시 자손에게로 이어지는 순환과 영원한 번영을 상징하도록 형상화 하였죠. 예로부터 충청도의 후덕한 인심은 회덕황씨로부터 시작되었듯 이러한 정신과 염원을 이 작품에 담고 있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회덕황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황씨의 도시조는 황락(黃洛)이죠. 후한의 유신으로 신라 유리왕 5년인 서기 28년에 교지국(交趾國) 지금의 베트남에 사신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경북 울진군 평해 월송록에 표착하여 그곳에 정착 세거하면서 우리나라 황씨의 뿌리가 되었다고 하죠.
황락의 후손인 회덕황씨는 대전의 토성으로, 고려 때 호부전서를 지내고 좌명공신에 녹훈된 회천군(懷川君) 황윤보(黃允寶)가 정치적인 혼란기를 피해 말년 회덕에 낙향 거주 하면서 회덕을 본관으로 하는 회덕황씨 1세조가 되었습니다.
병부전서를 지낸 2세 황연기(衍記)는 1332년 (고려 충혜왕) 폐원이 된 미륵원(彌勒院)을 사비를 들여 중수하여, 1352년 (공민왕)까지 20년 동안 서울과 영호남을 왕래하며 묵어가던 행려객 들에게 사계절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고, 풍우를 막아주는 등, 구호와 봉사활동을 하며 헌신적인 삶을 살다가 아들 4형제 (精, 粒, 粽, 粹)에게 이 사업을 계승토록 유언을 하고 서거하니 황씨 부자제 및 손자(子厚)대 까지 100년 이상을 이어지게 하였죠.
회덕황씨 선조의 미륵원 봉사는 이색(李穡)의 남루기(南樓記)와 하륜(河崙)등 조선초의 명사 20인이 지은 남루제영(南樓題詠)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많은 사람들의 칭송의 대상이 되어, 회덕의 후덕한 인심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죠.
충청도가 양반 소리를 듣는 원초적인 효시로서 남과 더불어 사는 사회봉사의 귀감이 되었으며, 후덕한 인심은 충청도의 향풍이 되었죠. 미륵원 운영의 봉사와 나눔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미륵원지를 2005년 대전광역시에서 지방문화재 41호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습니다(문중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회덕황씨의 인구는 8,385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jV7v-CXyvrw?si=pPp7e5Kvvk5--W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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