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수원 최(崔)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수원 최씨
성씨 최(崔)
작품명 화합과 기상
조각가 류종열
조형물번호 170
먼저 수원최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문중의 화합과 긍지 그리고 자손의 번영을 간결하고 강직한 모습의 추상적 해석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뒤쪽으로는 선조를 상징하고 앞쪽으로는 현재의 후손과 미래의 자손이 화합하며 번영한다는 뜻의 교차된 표현을 하였죠.
이로써 수원최씨의 자긍심과 진취적 기상을 자손만대에 고취시키고자 디자인된 작품이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수원최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수원최씨(水原崔氏)의 선계는 신라의 개국공신 소벌도리(蘇伐都利)이며, 시조는 고려 수주부호장(水州府戶長) 최상저(崔尙翥)입니다.
2세 최누백(婁伯)은 고려 제18대 의종 때에 한림학사를 지낸 효숙공(孝肅公)으로서, 높은 학식과 관직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의 효행이 고려사 · 신증동국여지승람 · 삼강행실도 · 오륜행실도 등에 수록되어 전해집니다.
그의 나이 15세에 아버지 최상저(尙翥)가 뒷산 홍법산에서 호식(虎食)을 당하자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끼를 메고 추적하여 호랑이를 잡고 (오륜행실도 누백포호(婁伯捕虎), 뒷면 음각) 시신을 거두어 안장한 다음 시묘삼년의 제례를 올렸습니다. 한편 먼저 타계한 부인 염경애(廉瓊愛)를 위해 직접 지은 묘지명(墓誌銘)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후손들은 번창하여 참판공(參判公), 헌납공(獻納公), 경헌공(敬憲公), 직장공(直長公), 상서공(尙書公), 목사공(牧使公) 등으로 분파하여 대종을 이루고 국가사회에 봉사하고 있습니다. 주로 서울 경기 경북 전남 충남 평안 함경 등지에 분포합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에서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수원최씨의 인구는 14,687명이었습니다.
그럼 이제 수원최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수원최씨(水原崔氏)의 선계는 신라의 개국공신 소벌도리(蘇伐都利)이며, 시조는 고려 수주부호장(水州府戶長) 최상저(崔尙翥)입니다.
2세 최누백(婁伯)은 고려 제18대 의종 때에 한림학사를 지낸 효숙공(孝肅公)으로서, 높은 학식과 관직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의 효행이 고려사 · 신증동국여지승람 · 삼강행실도 · 오륜행실도 등에 수록되어 전해집니다.
그의 나이 15세에 아버지 최상저(尙翥)가 뒷산 홍법산에서 호식(虎食)을 당하자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끼를 메고 추적하여 호랑이를 잡고 (오륜행실도 누백포호(婁伯捕虎), 뒷면 음각) 시신을 거두어 안장한 다음 시묘삼년의 제례를 올렸습니다. 한편 먼저 타계한 부인 염경애(廉瓊愛)를 위해 직접 지은 묘지명(墓誌銘)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후손들은 번창하여 참판공(參判公), 헌납공(獻納公), 경헌공(敬憲公), 직장공(直長公), 상서공(尙書公), 목사공(牧使公) 등으로 분파하여 대종을 이루고 국가사회에 봉사하고 있습니다. 주로 서울 경기 경북 전남 충남 평안 함경 등지에 분포합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에서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수원최씨의 인구는 14,687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LLQF8ITN95I6PHo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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