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의령 옥(玉)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의령옥씨
성씨 옥(玉)
작품명 우주(宇宙)의 광채(光彩)
조각가 신동수
조형물번호 172
먼저 의령옥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상부의 둥근 구슬(玉)은 무한한 우주의 광채를 상징하며 씨족의 무궁한 번성과 발전을 뜻합니다. 가운데의 황금마크는 옥 씨의 문장으로 우리 종족이 한 핏줄 한 뿌리에서 여섯 종파로 번져 나갔음을 뜻하고, 여섯 종파가 손잡고 하나라 뭉쳐 번영을 이루어 나간다는 의미입니다.
전체의 형상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기상으로 종족의 번영과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의령옥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의령 옥씨의 시조 옥진서(玉眞瑞)는 당나라 사람으로 서기 635년, 사학(四學)의 유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수의 임무를 띠고 고구려에 파견되어온 정관 8학사(貞觀八學士)의 한 분입니
다.
그 후 고구려와 신라 조에서 국학교수를 역임하며 생도들을 가르쳤는데 시서예약.충효제가(詩書禮樂.忠孝齊家)의 도를 펼쳐 그 덕화(德化)가 널리 미쳤으므로 나라에서 그 공을 가상히 여겨 의춘군(宜春君/의춘은 의령의 옛 지명)에 봉하고 돌아가신 후에 문혜(文惠)의 시호를 내렸고, 이 분이 옥 씨의 관향을 얻은 시조(始祖)가 됩니다.
이로써 의령(宜寧)은 옥 씨의 본관(本貫)이 되었죠. 그러나 오랜 세월 계보 기록의 실전으로 지금의 계보는 호적상 확인된 바, 고려 명종(明宗) 원년에 태어나 창정(倉正)의 벼을 한 옥은종(恩宗)을 중시조로 하고 있으며, 이후 8세조에 이르러 별시위공파 · 감사공파 · 학생공파 · 교리공파 · 학사공파 · 평장사공파의 6개 종파로 나뉘어졌습니다.
처음 영남을 중심으로 살아오던 후손들은 차츰 평안도 황해도 지역에도 옮겨 살았으며 오랜 세월과 함께 지금은 전국 각지로 흩어져 살게 되어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뿌리공원 문중유래비에서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의령옥씨의 인구는 19,095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eon40mw_0iwfq3V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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