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도강 김(金)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11. 14.
728x90

오늘은 도강 김(金)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도강 김씨
성씨 김(金)
작품명 번영(繁榮)
조각가 정규찬
조형물번호 163

 

먼저 도강김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도강김씨 시조 김희조의 경순대왕 자손임을 왕관으로 표현하여 상부에 두었으며, 후손들이 4개파로 분파했음을 하부에, 4개파를 상징하는 대나무의 싹 죽순으로 표한하여 각 파의 후손들이 대나무 처럼 올곳게 성장하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각 파조 김원경의 동정공파, 파조 김을경의 사직공파, 파조 김일의 전공조사공파, 파조 김을상의 병사공파를 의미하여 도안하였습니다.

중간의 작품에는 왕관의 외형적 미를 가미해 선을 함께 표현하였고, 문관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좌측에 붓을 조각하였습니다. 또한 우측에는 무관의 후손이 많이 배출된 무인의 이미지로 무관을 상징하는 검을 조각하여 후대에 이르러 문무를 겸비한 선조들의 모습을 함축적이고 간결하게 표현하고자 했죠. 하부에는 고려 19대 명종시 도성부원군 도강백 벼슬에 봉하면서 받은 교지 내용을 함축해 표현하였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도강김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도강김씨는 신라 제56대 경순왕의 넷째 왕자 대안군은열공(大安君 殷說公)의 7세손 김희조(希祖)가 시조입니다. 김희조는 고려 제17대 인종 2년 (1124년)에 태어났으며, 의종조에 등문과하여 명종조에 좌복야와 병부상서를 거쳐 문하시중을 역임했습니다. 병부상서 재임시 종묘사직을 구호한 지대한 공훈으로 도강백(道康伯)과 도성부원군(道城府院君)에 봉작되어 이후 자손의 본관이 도강이 되었으니 지금의 전남 강진입니다.

신종 2년 (1199년)에 세상을 떠나니 조정에서 공의 충효와 학덕을 찬양하여 문효(文孝)의 시호를 내렸습니다. 도강김문은 김원경(原卿)을 파조로 하는 동정공파, 김을경(乙卿)을 파조로 하는 시직공파, 김일(鎰)을 파조로하는 전공조사공파, 김을상(乙祥)을 파조로 하는 병사공파로 분파되어 명문거족으로 발전하였으니 모두 문효공의 큰 음덕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동정공의 손자 충민공 김회련(懷鍊)이 개국원종일등공신으로 한성좌윤을 역임한 후 이조판서와 홍문관대제학에 추증되었고, 618년 동안 종중에서 보존해 온 보물 제437호 공신녹권과 제438호 태조 왕지 2점이 정읍시립박물관에 기탁 중입니다.

전공조사공의 6세손 판윤공 김남우(南佑)는 중종조에 한성판윤을 역임하였으며, 시직공의 9세손 해암 김응정(應鼎)은 시가에 조예가 깊어 명종 승하 부보를 듣고 지은 서산락일가(西山落日歌)를 비롯한 전해오는 작품 모두가 주옥 같습니다.

임진왜란 시 의병장으로 활동하신 원모당 김후진, 동학혁명을 주도한 선봉장 김개남 장군과 대한민국 건국 후 제53대 농림부장관을 역임한 김영진, 제17대 국회의장을 역임한 김원기 등이 있습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에서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도강김씨의 인구는 31,496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GPnH41Xkt3PnZib7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