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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창녕 성(成)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창녕성씨
성씨 성(成)
작품명 화 합
조각가 김지삼
조형물번호 127
먼저 창녕성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조형물 하단에 호랑이를 표현해 문하시중공이 호랑이의 도움으로 명당을 찾게 됨을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위의 두 개의 형상은 그의 아들 판서공과 찬성공의 두 형태를 의미하죠. 또한 후손들도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번성하여 대대손손 축복받음을 나타낸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형물 하단에 호랑이를 표현해 문하시중공이 호랑이의 도움으로 명당을 찾게 됨을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위의 두 개의 형상은 그의 아들 판서공과 찬성공의 두 형태를 의미하죠. 또한 후손들도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번성하여 대대손손 축복받음을 나타낸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창녕성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시조 중윤공(中尹公) 성인보(成仁輔)의 출생연대나 창성연대(創姓年代)는 자세한 기록이 없습니다. 시조 중윤공은 정조사(正朝使)로 송경(松京)에 가서 머무르던 중 병환을 얻어 그곳에서 돌아가셨죠. 그의 아들인 문하시중공(門下侍中公)인 성송국(成松國)이 애통해하다가 천리부시(千里負屍)하여 고향인 창녕(昌寧)에 가던 중 현풍현(玄風縣)에 이르자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그래서 청산원(靑山院)의 바깥채 마루에 시신을 모시고 잠이 들었죠. 새벽에 깨어보니 밤새 눈이 많이 내리고 이상하게도 시체 주변의 눈 위에 범의 발자국이 있어 이상이 여긴 시중공(侍中公)이 범의 발자국을 따라가 보았더니 지금의 맥산(麥山) 묘소 자리까지 와서 범의 발자국은 끝이 나고 자리 한 잎 넓이만큼 눈이 녹아 있었습니다. 그 곳에 중윤공(中尹公)의 장례를 치르니 이곳이 바로 자손만대 불절(子孫萬代 不絶)의 명당(明堂)이었습니다.
창녕성씨(成氏)는 시조(始祖) 중윤공(中尹公)의 아들 문하시중공(門下侍中公) 성송국(成松國)은 판서공(判書公) 성공필(成公弼)과 찬성공(贊成公) 성한필(成漢弼) 형제를 두었습니다. 이 형제분 중에서 판서공파와 찬성공파로 크게 나누어졌는데 판서공파에서는 6세(六世)에서 10파(十派)가 형성되었고 찬성공파에서는 6세(六世)에서 3파(三派)가 형성되어 도합 13파(十三派)가 되었으며 현재 13파의 자손들이 전국에 이십여 만명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후손으로 역사에 유명한 분은 사육신(死六臣) 중 한분이신 성삼문(成三問)을 비롯하여 문묘에 배향된 성혼(成渾)을 위시하여 상신 7인, 충신을 비롯하여 청백리 또는 고관대작을 지낸 분은 부지기수이죠. 학식과 덕망으로 추대되어 역사와 국민 앞에 스승이 되는 분으로 전국 서원에 배향되신 분도 많이 계십니다(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본관 창녕성씨는 182,377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또한 본관 창령 5,433명, 창영 7,500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시조 중윤공(中尹公) 성인보(成仁輔)의 출생연대나 창성연대(創姓年代)는 자세한 기록이 없습니다. 시조 중윤공은 정조사(正朝使)로 송경(松京)에 가서 머무르던 중 병환을 얻어 그곳에서 돌아가셨죠. 그의 아들인 문하시중공(門下侍中公)인 성송국(成松國)이 애통해하다가 천리부시(千里負屍)하여 고향인 창녕(昌寧)에 가던 중 현풍현(玄風縣)에 이르자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그래서 청산원(靑山院)의 바깥채 마루에 시신을 모시고 잠이 들었죠. 새벽에 깨어보니 밤새 눈이 많이 내리고 이상하게도 시체 주변의 눈 위에 범의 발자국이 있어 이상이 여긴 시중공(侍中公)이 범의 발자국을 따라가 보았더니 지금의 맥산(麥山) 묘소 자리까지 와서 범의 발자국은 끝이 나고 자리 한 잎 넓이만큼 눈이 녹아 있었습니다. 그 곳에 중윤공(中尹公)의 장례를 치르니 이곳이 바로 자손만대 불절(子孫萬代 不絶)의 명당(明堂)이었습니다.
창녕성씨(成氏)는 시조(始祖) 중윤공(中尹公)의 아들 문하시중공(門下侍中公) 성송국(成松國)은 판서공(判書公) 성공필(成公弼)과 찬성공(贊成公) 성한필(成漢弼) 형제를 두었습니다. 이 형제분 중에서 판서공파와 찬성공파로 크게 나누어졌는데 판서공파에서는 6세(六世)에서 10파(十派)가 형성되었고 찬성공파에서는 6세(六世)에서 3파(三派)가 형성되어 도합 13파(十三派)가 되었으며 현재 13파의 자손들이 전국에 이십여 만명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후손으로 역사에 유명한 분은 사육신(死六臣) 중 한분이신 성삼문(成三問)을 비롯하여 문묘에 배향된 성혼(成渾)을 위시하여 상신 7인, 충신을 비롯하여 청백리 또는 고관대작을 지낸 분은 부지기수이죠. 학식과 덕망으로 추대되어 역사와 국민 앞에 스승이 되는 분으로 전국 서원에 배향되신 분도 많이 계십니다(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본관 창녕성씨는 182,377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또한 본관 창령 5,433명, 창영 7,500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wdczzQlNkghXWEg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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