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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한양 조(趙)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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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양 조(趙)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한양조씨
성씨 조(趙)
작품명 영원(永遠)의 빛
조각가 조승환
조형물번호 124

먼저 한양조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한양조씨는 수백 년을 거쳐오는 동안 명문거족으로서 많은 문무 인재를 배출하였죠. 국가와 민족의 선구자적 역할을 해온 전통을 오늘에 이어받아 온 누리를 밝히는 횃불이 될 한양 조씨 가문의 기풍을 표현하였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한양조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한양조씨의 본향은 지금의 서울인 한양입니다. 시조 조지수(之壽)는 고려 중기에 조순대부 첨의중서사를 지냈죠.
아들 형제를 두었는데 첫째는 판도판서 조인재(麟才), 둘째는 쌍성총관 조휘(暉)입니다. 판도판서공의 손자 조세진(世珍)은 예의판서 한산백 이고, 증손 충무공 조영무(英茂)는 조선 개국공신으로 정승을 지냈으며 태종묘에 배향되었죠.

총관공의 아들 조양기(良琪)는 총관 겸 부원수이며 손자 용성부원군 조돈(暾)은 아들 조인벽(仁璧)과 함께 홍건적 격퇴에 큰 공을 세웠죠. 조돈의 첫째 아들 조인벽은 4도 도지휘사와 삼사좌사를, 셋째 조인규(仁珪)는 검한성을 지냈고, 넷째 조인옥(仁沃)은 개국공신으로 태조묘에 배향되었죠. 개국공신인 조온(溫)은 찬성사를, 좌명공신인 조연(涓)은 우의정을,조사(師)는 첨지중추원사를 지냈죠.

한양조씨는 문묘배향 1명, 종묘배향 2명, 봉군 16명, 부조묘 7명, 시전 15명, 체식 18명, 청백리 2명, 문과급제 90여 명의 인재를 배출하였습니다. 계유년 단종 복위를 기도한 충무공의 손자 조완규(完珪) 등 한 집안 여섯 명과, 충정공 손자 조순생(順生)과 그 아들, 손자와 함께 세조에게 화를 당하는 충절을 지켰습니다.

특히 문정공 정암 조광조(光祖)는 도학정치를 폈으며 문묘에 배향되었고, 문절공 조원기(元紀), 문간공 조경(絅)은 청백리이죠.
임진왜란때 의병장인 백기당 조웅(熊), 산서공 조경남(慶男), 일제 강점기 대한독립단장 조맹선(孟善), 최근에는 대정치가 유석 조병옥(炳玉) 박사, 시인 조지훈(芝薰), 조병화(炳華)등이 있고
각계각층에서 많은 인재들이 선도적 역할을 하고 한양조씨 문중을 더욱 빛내고 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한양조씨의 인구는 332,580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_rEcKI2_mSs?si=GLdwrK7HKZaEU3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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