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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양씨(梁氏 : 제주 남원 충주)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양씨(제주 남원 충주 양씨)
성씨 양(梁)
작품명 애족(愛族)의 길
조각가 회일
조형물번호 117
먼저 양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양씨(제주 남원 충주 양씨)
성씨 양(梁)
작품명 애족(愛族)의 길
조각가 회일
조형물번호 117
먼저 양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조형물의 좌대는 제주도를 나타냅니다. 좌대위의 산 모양은 한라산이구요. 세 개의 봉우리는 삼성혈, 원석은 백록담이죠. 상단에 성화를 두 손으로 받든 것은 양문을 상징한 것으로써 제주도 한라산 정기를 받아 탐라국을 개국한 양을나 시조의 후손은 백록담처럼 영원하며 성화같이 온누리를 밝혀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며 번창함을 기원한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양씨(제주 남원 충주양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양씨(梁氏) 시조는 제주도 삼성혈(三姓穴)에서 나와 탐라국을 개국한 양을나(良乙那) 입니다. 중시조 탐라국주 양탕(梁宕)이 신라 내물왕 때 입조하여 선린외교를 하였고, 그 때부터 어질양(良)자의 성(姓)을 나라양(梁)자의 성(姓)으로 쓰게 되었죠.
제주양씨(濟州梁氏)는 한라군 양순(梁洵)이 신라 신문왕 때 한림학사에 봉해졌고, 고려 태조 때 성주왕자를 봉작 받은 양구미(梁具美)가 성주공파(星主公派), 고려 명종 때 유격장군이 된 양보숭(梁保崇)이 유격공파(遊擊公派), 각각 기세조(起世祖)입니다.
남원양씨(南原梁氏)는 양우량(梁友諒)이 신라 경덕왕 때 남원부백에 봉해졌고, 고려 성종 때 병부랑중 동궁내 시강학사에 오른 양능양(梁能讓)이 병부공파(兵部公派), 고려 원종 때 찬화공신 용성부원군에 책봉된 양주운(梁朱雲)이 용성군파(龍城君派), 고려 충선왕 때 대방부원군에 봉해진 양수정(梁水精)이 대방군파(帶方君派), 각각 기세조(起世祖)가 됩니다.
충주양씨(忠州梁氏)는 고려 태조 때 삼한통합대장군이 되고 예성부원군으로 훈봉받은 양능길(梁能吉)이 예성군파(蘂城君派) 기세조(起世祖)이죠. 이처럼 제주, 남원, 충주로 본관이 나누어졌으나 근원은 한 뿌리에서 내려온 혈족입니다.
고려시대 성주공 양호(梁浩), 조선시대 증 영의정 양여공(梁汝恭), 대제학 문양공 양성지(梁誠之), 청백리 일로당 양관(梁灌), 대사간공 양사귀(梁思貴), 학포 양팽손(梁彭孫), 소쇄처사 양산보(梁山甫), 임진왜란 때 충장공 양대박(梁大樸)장군, 병인양요 때 충장공 양헌수(梁憲洙)장군, 3·1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양전백(梁甸伯), 양한묵(梁漢默), 임시정부 때 독립운동가 양기탁(梁起鐸), 양세봉(梁世奉), 양기하(梁基瑕), 문학박사 양주동(梁柱東), 민주통일당총재 양일동(梁一東)이 양씨문중(梁氏門中)을 빛낸 훌륭한 선조입니다(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양씨의 인구는 본관 제주 142,211명, 본관 남원 307,724명 이었습니다.
양씨(梁氏) 시조는 제주도 삼성혈(三姓穴)에서 나와 탐라국을 개국한 양을나(良乙那) 입니다. 중시조 탐라국주 양탕(梁宕)이 신라 내물왕 때 입조하여 선린외교를 하였고, 그 때부터 어질양(良)자의 성(姓)을 나라양(梁)자의 성(姓)으로 쓰게 되었죠.
제주양씨(濟州梁氏)는 한라군 양순(梁洵)이 신라 신문왕 때 한림학사에 봉해졌고, 고려 태조 때 성주왕자를 봉작 받은 양구미(梁具美)가 성주공파(星主公派), 고려 명종 때 유격장군이 된 양보숭(梁保崇)이 유격공파(遊擊公派), 각각 기세조(起世祖)입니다.
남원양씨(南原梁氏)는 양우량(梁友諒)이 신라 경덕왕 때 남원부백에 봉해졌고, 고려 성종 때 병부랑중 동궁내 시강학사에 오른 양능양(梁能讓)이 병부공파(兵部公派), 고려 원종 때 찬화공신 용성부원군에 책봉된 양주운(梁朱雲)이 용성군파(龍城君派), 고려 충선왕 때 대방부원군에 봉해진 양수정(梁水精)이 대방군파(帶方君派), 각각 기세조(起世祖)가 됩니다.
충주양씨(忠州梁氏)는 고려 태조 때 삼한통합대장군이 되고 예성부원군으로 훈봉받은 양능길(梁能吉)이 예성군파(蘂城君派) 기세조(起世祖)이죠. 이처럼 제주, 남원, 충주로 본관이 나누어졌으나 근원은 한 뿌리에서 내려온 혈족입니다.
고려시대 성주공 양호(梁浩), 조선시대 증 영의정 양여공(梁汝恭), 대제학 문양공 양성지(梁誠之), 청백리 일로당 양관(梁灌), 대사간공 양사귀(梁思貴), 학포 양팽손(梁彭孫), 소쇄처사 양산보(梁山甫), 임진왜란 때 충장공 양대박(梁大樸)장군, 병인양요 때 충장공 양헌수(梁憲洙)장군, 3·1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양전백(梁甸伯), 양한묵(梁漢默), 임시정부 때 독립운동가 양기탁(梁起鐸), 양세봉(梁世奉), 양기하(梁基瑕), 문학박사 양주동(梁柱東), 민주통일당총재 양일동(梁一東)이 양씨문중(梁氏門中)을 빛낸 훌륭한 선조입니다(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양씨의 인구는 본관 제주 142,211명, 본관 남원 307,724명 이었습니다.
양팽손
https://youtu.be/2DpDktc-Amw?si=YHULo1ICqnIzfh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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