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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풍기 진(秦)씨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풍기진씨
성씨 진(秦)
작품명 우거진 나락 (벼)
조각가 박철찬
조형물번호 114
먼저 풍기진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굳은 절개와 풍요롭고 알찬 풍기 진(秦)씨의 역사를 바탕으로 하여 예술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우거진 나락(벼)를 상징으로 선조들의 혼을 담아 후세에 충효와 독실(篤實)의 긍지가 자손만대에 번영하라는 염원을 담은 작품이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풍기진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풍기진씨 시조 진필명(秦弼明)은 중국 당나라 고종 무덕 7 갑신년(624) 오주(吳州)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부터 용기와 지혜를 갖추어 의지가 남달리 뛰어난 성품을 가졌으며 조정에 나가 벼슬을 하게 됨에 병부시랑(兵部侍郞)에 올랐죠.
서기 660년 신라와 당(唐)나라 연합군이 편성되어 특별명령으로 대사마 대장군(大司馬 大將軍)에 임명되어 소정방 총대장군과 같이 신라로 건너와 나당연합군에 참가했습니다. 진필명 대사마 대장군은 신라 장군 김유신과 더불어 13만 대군을 이끌고 백제 정벌에 참전 백제를 패망시키니 신라 30대 문무왕(661~681)이 큰 잔치를 베풀어 주면서 “태원백”(太原伯)으로 특별히 봉하였죠.
서기 668년 고구려 패주(浿州)땅의 평양성이 함락되고 난 뒤 류경(柳京 지금의 평양)에 다다라서 보니 대동강을 끼고 있는 도읍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성격이 유순하며 “시”와 “풍류”가 뛰어난 문화인들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그 옛날 기자(箕子)가 거느리고 온 5천이 넘는 사람들 틈에 나 또한 한 몫을 더하고저 함이라”하며 마음을 굳게 다지고 기자묘(箕子廟)를 참배한 뒤 귀화절차를 밟아 이 땅에 삶을 이룩하니 오늘의 “진씨(秦氏)” 시조가 된 것이죠.
시조로부터 15세 손자 “진질명(秦礩溟)”이 서기 1187 정미(고려 19대 명종 17)년 조원정란이 일어나 이를 평정하는데 공을 세우니 “기주부원군”(基州府院君 지금의 풍기)에 봉해졌습니다. 이때부터 후손들은 “관향”을 “기주”(풍기)로 정하고 “풍기 진씨”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시조로부터 18세 손 “진중길” “진중기” “진중백(계백)” 3형제 맏형인 “진중길”은 고려말기의 학자로서 “통직랑(정5품)”인 판도정랑 계림판관(鷄林判官)에 올랐으나 그만두고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으며 영풍군 봉현면 노(로)좌리 “노(로)계서원(魯溪書院)”에 모셔져 있습니다.
장자 진중길은 “선계랑공파, 순천공파, 산음공파, 감사공파, 감정공파, 제학공파의 줄기 흐름을 이루고 있고, 차자인 “진중기”는 전서공파로서 대원파, 삼척파, 남원파의 줄기를 이루고 3자인 “진중백(계백)”은 제주도로 건너가서 후손들 장파인 판포(板浦)파, 중파인 명월(明月)파, 말파인 납읍(納邑)파를 이루고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뿌리공원 문주의 유래비에서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풍기진씨는 12,974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서기 660년 신라와 당(唐)나라 연합군이 편성되어 특별명령으로 대사마 대장군(大司馬 大將軍)에 임명되어 소정방 총대장군과 같이 신라로 건너와 나당연합군에 참가했습니다. 진필명 대사마 대장군은 신라 장군 김유신과 더불어 13만 대군을 이끌고 백제 정벌에 참전 백제를 패망시키니 신라 30대 문무왕(661~681)이 큰 잔치를 베풀어 주면서 “태원백”(太原伯)으로 특별히 봉하였죠.
서기 668년 고구려 패주(浿州)땅의 평양성이 함락되고 난 뒤 류경(柳京 지금의 평양)에 다다라서 보니 대동강을 끼고 있는 도읍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성격이 유순하며 “시”와 “풍류”가 뛰어난 문화인들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그 옛날 기자(箕子)가 거느리고 온 5천이 넘는 사람들 틈에 나 또한 한 몫을 더하고저 함이라”하며 마음을 굳게 다지고 기자묘(箕子廟)를 참배한 뒤 귀화절차를 밟아 이 땅에 삶을 이룩하니 오늘의 “진씨(秦氏)” 시조가 된 것이죠.
시조로부터 15세 손자 “진질명(秦礩溟)”이 서기 1187 정미(고려 19대 명종 17)년 조원정란이 일어나 이를 평정하는데 공을 세우니 “기주부원군”(基州府院君 지금의 풍기)에 봉해졌습니다. 이때부터 후손들은 “관향”을 “기주”(풍기)로 정하고 “풍기 진씨”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시조로부터 18세 손 “진중길” “진중기” “진중백(계백)” 3형제 맏형인 “진중길”은 고려말기의 학자로서 “통직랑(정5품)”인 판도정랑 계림판관(鷄林判官)에 올랐으나 그만두고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으며 영풍군 봉현면 노(로)좌리 “노(로)계서원(魯溪書院)”에 모셔져 있습니다.
장자 진중길은 “선계랑공파, 순천공파, 산음공파, 감사공파, 감정공파, 제학공파의 줄기 흐름을 이루고 있고, 차자인 “진중기”는 전서공파로서 대원파, 삼척파, 남원파의 줄기를 이루고 3자인 “진중백(계백)”은 제주도로 건너가서 후손들 장파인 판포(板浦)파, 중파인 명월(明月)파, 말파인 납읍(納邑)파를 이루고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뿌리공원 문주의 유래비에서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풍기진씨는 12,974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srtKUXRH7l4Itp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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