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교하 노(盧)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8. 20.
728x90
오늘은 교하 노(盧)씨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오늘은 교하노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교하노씨
성씨 노(盧)
작품명 화합(和合)의 꽃
조각가 윤황식
조형물번호 83

먼저 교하노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조형물의 전체 형태는 교하노씨 명 대가의 역사를 바탕으로 안정된 비례와 적당한 묘사생략을 통해 조형화한 작품입니다.

세 개의 손 형태는 문중의 화합을 뜻하고 가운데의 원은 강한 생명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후세의 번영을 염원한다는 뜻을 형상화시킨 작품이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교하노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교하노씨(交河盧氏)의 본관인 교하(交河)는 경기도 파주시에 속한 교하읍이죠. 신라 때 교하군 이었는데 파주시로 통합되었고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곳을 따라 교하(交河)라 일컬어 왔습니다. 당나라 한림학사 노수(盧穗)의 차남, 한림학사 노오(盧塢)가 8학사의 한 분으로 통일신라에 오자 국빈(國賓)의 예로 경기도 교하백에 봉작하여 교하노씨가 발원했습니다.

노강필(盧康弼)은 태조 왕건과 동년배로 개국공신이며 태자태사의 작위를 받았으며, 개성 신흥사 공신당(功臣堂)에 삼한공신 54인을 도화하여 모신 공신 중 한 분으로 고려대전에 개국공신으로 위패를 봉안했죠.
수대에 이르러 고려조 증 문하시중 노영수(盧穎秀) 의열공(懿烈公)의 아들인 첨의정승 노척이 아들 4형제를 두었으니 노제(盧濟)는 서원군(瑞原君 : 서원:파주), 노진(盧稹)은 창성군(昌城君 : 공양왕 왕비 순비의 부친), 노은(盧訔)은 경원군(慶原君), 노영(盧渶)은 신양군(新陽君)에 봉군받아 4파를 이루고 있습니다.

문하시중 노영순의 후손인 노지유(盧智儒)는 4군파와 같은 시대에 홍건적의 난에 무공을 세워 신창군(新昌君 : 아산시 신창읍)에 봉군, 분관하여 후손들이 신창노씨(新昌盧氏)로 계승하고 있습니다.

조선조에서 우의정 노한(盧閈) 공숙공(恭肅公), 영의정 노사신(盧思愼) 문광공(文匡公), 알성문과 장원급제 노직(盧稙) 등 충효열사의 인물을 배출했으며, 청주의 체화서원(棣華書院)에 체화당 4위와 서암공을 배향, 창원의 첨두서원(瞻斗書院)에 학자 충신을 배향했습니다.

현대에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노태우(盧泰愚)를 비롯하여 많은 인물을 배출하여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교하노씨의 인구는 61,747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cc2Xz5DMtWVulqlY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