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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원주 원(元)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원주원씨
성씨 원(元)
작품명 대지
조각가 계낙영
조형물번호 78
먼저 원주원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원주원씨 조형물은 유기적인 형태가 시각적으로 가지고 있는 물리적인 특성과 정반대의 물성을 가진 돌이라는 표현매체에 접합시킨 형상입니다.
원주원씨 조형물은 유기적인 형태가 시각적으로 가지고 있는 물리적인 특성과 정반대의 물성을 가진 돌이라는 표현매체에 접합시킨 형상입니다.
이는 추운 겨울이 지나 만물이 소생하고 기운 행동하는 형태를 조형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죠. 정치적 격변기에 격하되어온 원씨 종친의 새로운 도약과 새 역사를 만들어 내는 초석으로 그 상징성을 현대적인 기법으로 조형화 한 작품이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원주원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원씨(元氏)의 시조(始祖)인 원경(元鏡)은 고구려 때 좌명공신(佐命功臣)에 책봉(冊封) 되었고, 서기 645년 신라로 옮겨 선덕여왕(善德女王)으로부터 국빈(國賓) 예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원주원씨(原州元氏)는 원경(元鏡)을 시조로 하는 운곡계(耘谷系), 고려개국공신으로 병부령을 지낸 원극유(元克猷)를 시조로 하는 원성백계(原性伯系), 고려 신종조(神宗朝) 때 문과 우시랑(右侍郞)을 역임한 원익겸(元益謙)을 시조로 하는 시중공계(侍中公系) 등 3계파(系派)로 계대(繼代)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단일 본관(本貫)이면서도 각 각 다른 시조로 창보통족(創譜統族)하였는데, 앞으로 사료(使料)를 발굴하고 종사(宗史)를 연구하여 합보통족(合譜通族)해야 할 것입니다.
원주원씨(原州元氏)에는 역사를 빛낸 인물들이 많죠. 운곡계(耘谷系)의 원천석(元天錫)은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이방원(조선 태종)을 가르친 스승이었으나, 고려 말에 조정이 혼란해지자 고향인 원주 치악산에 들어가 절의(節義)를 지킨 충신이었습니다.
원성백계(原性伯系)의 원부(元傅)는 고려 원종 때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거쳐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지냈으며, 충렬왕 때에는 감수국사(監修國史)로서 고금록(古今錄)을 편찬하였죠.
시중공계(侍中公系)의 원호(元昊)는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집현전직제학(集賢殿直提學)을 버리고 원주로 돌아와 폐문불출한 생육신(生六臣)이었습니다.
이러한 가문(家門)의 자손(子孫)인 우리들은 현출하셨던 조상의 음덕을 기리며 국가와 사회의 유위(有爲)한 일원으로 예(禮)와 의(義)를 중히 여기는 모범적 가정을 영위 하면서 종족의 융성과 국가 사회의 번영을 위하여 힘써야 하겠습니다.(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원주원씨는 126,677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원씨(元氏)의 시조(始祖)인 원경(元鏡)은 고구려 때 좌명공신(佐命功臣)에 책봉(冊封) 되었고, 서기 645년 신라로 옮겨 선덕여왕(善德女王)으로부터 국빈(國賓) 예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원주원씨(原州元氏)는 원경(元鏡)을 시조로 하는 운곡계(耘谷系), 고려개국공신으로 병부령을 지낸 원극유(元克猷)를 시조로 하는 원성백계(原性伯系), 고려 신종조(神宗朝) 때 문과 우시랑(右侍郞)을 역임한 원익겸(元益謙)을 시조로 하는 시중공계(侍中公系) 등 3계파(系派)로 계대(繼代)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단일 본관(本貫)이면서도 각 각 다른 시조로 창보통족(創譜統族)하였는데, 앞으로 사료(使料)를 발굴하고 종사(宗史)를 연구하여 합보통족(合譜通族)해야 할 것입니다.
원주원씨(原州元氏)에는 역사를 빛낸 인물들이 많죠. 운곡계(耘谷系)의 원천석(元天錫)은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이방원(조선 태종)을 가르친 스승이었으나, 고려 말에 조정이 혼란해지자 고향인 원주 치악산에 들어가 절의(節義)를 지킨 충신이었습니다.
원성백계(原性伯系)의 원부(元傅)는 고려 원종 때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거쳐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지냈으며, 충렬왕 때에는 감수국사(監修國史)로서 고금록(古今錄)을 편찬하였죠.
시중공계(侍中公系)의 원호(元昊)는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집현전직제학(集賢殿直提學)을 버리고 원주로 돌아와 폐문불출한 생육신(生六臣)이었습니다.
이러한 가문(家門)의 자손(子孫)인 우리들은 현출하셨던 조상의 음덕을 기리며 국가와 사회의 유위(有爲)한 일원으로 예(禮)와 의(義)를 중히 여기는 모범적 가정을 영위 하면서 종족의 융성과 국가 사회의 번영을 위하여 힘써야 하겠습니다.(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원주원씨는 126,677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GdxuHBpU8nZDzU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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