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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한산 이(李)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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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산 이(李)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한산이씨
성씨 이(李)
작품명 향수
조각가 천종권
조형물번호 75

먼저 한산이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선조의 고매한 학덕과 굳은 절조를 숭상하는 자손들의 그리움과, 후손들의 번영과 학문 숭상을 기원하는 선조의 간곡한 유훈을 족자와 붓 그리고 종회의 휘장으로 형상화 했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한산이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한산이씨가 관향(貫鄕)을 한산으로 삼게 된 것은, 고려 때 원(元)나라 제과(制科) 전시(殿試)등에 네 번이나 급제한 성리학(性理學)의 대종(大宗) 문효공(文孝公) 가정(稼亭) 이곡(李穀: 1298~1351)선생과, 그의 아들로서 문과에 장원 급제하고 다음해 원(元)의 전시에 합격하여 두 나라의 온갖 중요 요직을 거쳐 정당문학(政堂文學), 대사성(大司成), 대제학(大提學),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오른 문정공(文靖公) 목은(牧隱) 이색(李穡 : 1328~1396)선생이 한산부원군(府院君)에 봉해진 데에서
연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산은 한산이씨 시조인 호장공(戶長公)계의 이윤경(李允卿) 호장의 자손들이 정착하여 8백년 동안 쌓아 놓은 고고한 삶의 흔적이 살아 숨 쉬는 한산이씨의 터전입니다.

가정 이곡 선생은 한국 가전체(假傳體) 문학의 시초인「죽부인전(竹夫人傳)」외 수많은 작품을 남긴 대문호이죠. 또 원(元)나라에서 문명을 떨친 정치, 외교가로서 당시 고려의 딸들을 원나라에 강제로 데려가는 고통스러운 제도(貢女制度)를 원의 순제에게 간하여 폐지케 한 불멸의 고려 공신입니다. 목은 이색 선생은 고려의 관리로서 전제개혁(田制改革) 등 당시의 정치, 사회의 폐단을 과감히 개혁한 정치가이죠.

성균관을 창건하여 수년간 대사성을 맡아 성리학의 전파와 생활화에 크게 공헌한 우리나라 성리학의 유종(儒宗)이자 교육가입니다. 뛰어난 문장과 6천수 이상의 주옥같은 시를 남긴 동방의 대문호이죠.

특히 고려가 조선으로 바뀌는 때에, 마지막까지 고려를 지키고자 했던 선생의 굳은 절조(불사이군不事二君)는 단순한 정치적 태도를 넘어 유교전래의 가치관(춘추대의春秋大義)의 실천이었죠. 따라서 목은 선생을 지금까지 삼은(三隱)중의 한 분으로 존숭(尊崇)하고 있는 것이죠. 한산이씨는 가정 이곡과 목은 이색 선생을 중시조로 받들고 있습니다.
 

https://youtu.be/nCV7qDL6YeA?si=hNm890nI-du0DF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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