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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남평 문(文)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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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남평 문(文)씨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남평문씨
성씨문(文)
작품명
조각가박병희
조형물번호80

먼저 남평문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조형물은 문암바위, 목화, 물레, 해, 달, 별 등 남평문씨를 상징하는 형태 속에 훌륭한 유래문을 넣어 조상을 섬기고 서로 우애하는 아름다운 남평문씨를 표현했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남평문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남평문씨 시조 무성공 문다성(文多省)은 전남 나주시 남평읍 풍림리에 있는 장자못 옆 문암(文巖)에서 오색구름이 감돌면서 태어났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군주께서 양육하니 문사와 무략이 뛰어나 글월文자를 성으로 하고 이름을 다성(多省), 자를 명원(明遠), 호를 삼광(三光)이라 하였다고 하죠.

삼중대광보국 삼한벽상공신에 오르고 남평개국백에 봉하고 무성(武成)의 시호를 받았습니다. 시조가 탄강한 바위를 문암(文巖)이라 하고 문암을 보호하는 문암각을 남평문씨의 발상지로 하여 장자못 옆 장연서원(長淵書院)에 위패를 봉안하고
있죠.

후손 문익(文翼)은 고려 숙종조에 우산기상시를 지내고 아들 넷을 두었는데 첫째 문공인(文公仁)은 인종조에 수상의 지위에 오르고 시호는 충의(忠懿)입니다. 둘째 문공원(文公元)도 수상의 지위에 오르고 의종 묘정에 배향되고 시호는 정경(貞敬)이죠. 셋째 문가관(文可觀)은 조계종 대선사이고, 넷째 문공유(文公裕)는 강직한 명필재상으로 시호는 경정(敬靖)이며 글씨는 묘향산 보현사기(妙香山 普賢寺記)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문공유의 아들 문극겸(文克謙)은 고려조 일대의 명재상으로 시호는 충숙(忠肅)으로 명종 묘정에 배향되었죠. 문극겸의 아들 문후식(文侯軾)은 신종 때 대부경과 동북면 지병마사를 지냈고, 문유필(文惟弼)은 고종 조 참지정사 판예부사를 지낸 명재상입니다. 5대에 걸쳐 여러 명의 수상과 재상을 배출하고 귀족 가문과 통혼함으로써 고려시대의 귀족 문벌가문이 되었죠.

문극겸의 손자 문착(言卓)은 남제공(南濟公)으로 남제공파의 파조이고, 문극겸의 5대 손인 문근(文瑾)은 판도판서(版圖判書)로 판도판서공파의 파조이며, 고려말(麗末)의 문달한(文達漢)은 문극겸의 6대손으로 찬성사를 지내고 순평군(順平君)으로 봉해졌죠. 문극겸의 8대손인 문구(文龜)는 감천군(甘泉君)으로 감천군파의 파조이고, 문극겸의 9대손 문익겸(益謙)은 충혜공(忠惠公)으로 충혜공파의 파조입니다.

문익점(文益漸)은 문극겸의 9대손으로 공민왕 때 목화씨를 전래하여 의류 혁명의 대공을 세운 명유(名儒)로 우문관제학, 좌사의대부, 증 영의정 부민후 강성군(江城君)으로 봉하고, 시호는 충선(忠宣)이며 도천서원과 부조묘에 배향되었습니다.

문씨는 고려조에는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으나 조선조에서는 삼우당 문익점이 절의를 지키고 은거 불사한 영향을 받아 벼슬한 이가 고려조에 비해 적은 편이죠.

문씨는 단일본으로 전국에 40만여 명이 거주하고있는데요.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남평문씨의 인구는 445,946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W6J0lx1g13s?si=up1QeuocVdHLYK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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