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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풍양 조(趙)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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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풍양조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풍양 조씨
성씨 조(趙)
작품명 메신저(messnger)'97뿌리
조각가 조 성 묵 (전업 조각가)
조형물번호 33

먼저 풍양조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조형물의 흰색 화강석은 현대(現代)를, 검은 오석은 고대(古代)를 상징합니다.
날카로운 모습을 하고 있는 삼각형 구조의 청동 조각은 현대와 고대의 시간에 서 있는 우리세대와 뿌리 의식을 함께 투영한 예술적 작품이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풍양조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풍양조씨의 발상지는 고려시대 풍양현이니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송릉리입니다. 신라말기에 바위 라는 은자(隱者) 한 분이 천마산 지맥인 독정산(獨井山)의 암굴(巖窟)에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고려 태조 왕건이 찾아가 장군을 삼으니 보령 70세였고 모습이 웅위하고 수염이 아름다웠다고 하죠.
태조의 남정(南征)에 여러 차례의 공을 세워 개국공신이 되고 맹(孟)이란 이름을 하사 받았으며 벼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러 풍양조씨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풍양조씨는 고려시대에 중간 세계(世系)의 실전으로 전직공파(殿直公派) 평장공파(平章公派. 南原公派) 상장군공파(上將軍公派)가 계파를 달리하며 전직공파는 다시 호군공파(護軍公派) 회양공파(淮陽公派) 금주공파(錦州公派)로 분파되어 5대파로 불러오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도 벼슬이 이어졌고,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는 더욱 현창하여 문과 180여 명에 정승7명 문헌4명 왕비2명을 비롯하여 많은 문무백관과 도덕문장이 배출되어 우리나라 성씨의 명문으로 일컬어집니다.

현재에도 국내외의 각 계층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뛰어난 인재들이 많으므로 계속 무궁한 발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풍양조씨의 인구는 124,262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HqikECOCegFe2_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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