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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온양 방(方)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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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온양 방(方)씨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온양 방씨
성씨 방(方)
작품명 家傳忠孝 世守敦睦(가전충효 세수돈목) 향(向)
조각가 이태근(대전조각협회, 한국예술협회원)
조형물번호 28

먼저 온양방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온양방씨 가문의 휘장은 중앙을 구심점으로 하여 각 방향으로 힘차게 솟아 오르는 기상과 약동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어느쪽에서 보아도 방자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온양방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방(方)씨의 비조(鼻祖)는 방뇌(方雷)입니다. 기원전 2357년 고대 중국의 유망황제가 장자 뇌 공(雷 公)을 하남성 방산땅에 방산군(方山君)으로 봉하게 됨으로서 방(方)씨로 득성 천하의 방씨 비조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방(方)씨의 시조(始祖)는 방지(方智)이고 자(字)는 천경(天慶), 호는 월봉(月峯) 또는 화천(花川)입니다. 선생은 신라 문무왕 9년(서기669년) 당나라 한림학사의 신분으로 신라 조정의 초빙에 의하여 황명을 받아 문화사절로 와서 육체구경(六體九經)을 완석 저술 훈도한 문조(文祖)이죠. 선생은 오성위(五聖位) 18현과 같은 반열에 올라야 마땅한 어른이며 조정의 권유로 장(張)씨로 배필로 맞아 상주 지방을 봉작받고 관향을 상주로 삼고 세거했죠.
중시조(中始祖)는 온수군(溫水君) 방운(方雲)이며 고려 건국공신으로서 고려 광종 14년 (서기903년) 상서좌업사(尙書左僕射) 정2품에 오르고 성종 14년에 정1품의 특별관작인 온수군의 봉작과 아울러 온양 아산 신창 삼읍을 사패지로 받아 과안산에 복거했습니다. 그 산이 배방산으로 명명되었으며 그 후손이 온양일대에 살게되어 본관을 온양으로 삼았습니다. 공이 온양방씨의 1세이입니다. 온양 방씨는 온양에서만 육군(六君)(온수 온양 온창 온천 온성 온안)의 봉작을 받은 후 예로서 상주와 온양은 방(方)씨의 성지이죠.

후손 중 12세 방우선 하남후작 문정공(方于宣 河南侯爵 文定公) 께서는 4형제를 두셨고 넷째 아들 태상경공 방유이죠. 공께서는 고려 충렬왕때 큰 군공으로 군위(軍威)을 사패지로 받음으로 온양에서 분관되어 그 후손들이 군위를 본관으로 삼았습니다.

14세 방언휘(方彦暉)는 고려 충목왕의 국구가 되어 온천 부원군의 봉작을 받고 공민왕께서 복부성을 축성케하여 배방산성으로 명명했습니다. 태종 숙종 영조께서는 방성(方姓)을 황민(皇民)으로 예우하라는 교지를 내린바 있습니다.

방씨는 신라 고려 조선에 걸쳐 11군 16재상을 배출하였고 15세 문의공(文毅共) 방순(方恂)을 위시 모든 세록지신들이 조선조 초기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킨 연유로 사패지를 몰수당하고 선영을 파괴 당하는 등 수모를 겪었습니다.

18세 방효유정학(方孝孺正學)선생은 동양 팔대장부중 학문과 절개의 일인이며 만세의 충신되었고 청현신11명 공신 45명 명현신 86명 효자 54명 효열부13명 등 훌륭한 조상을 모시고 있는 자랑스러운 가문입니다.

근세에 이르러 방씨 가문의 큰별이 된 소파 방정환(方定煥) 선생은 어린이들의 영원한 벗이요 겨레의 스승이며 선각자로 우리나라 역사에 길이 빛날 분입니다.

우리 방씨는 13세때에 7개파로 나누어 졌고 현재 30세손으로부터 42세손에 이르기까지 번창하고 있으며 숭조(崇祖) 충효(忠孝) 화친(和親)을 종훈(宗訓)으로 삼아 훌륭하신 조상을 모시고 산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화합하고 단결하여 인류 문화 창달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에 전국종친들의 정성어린 뜻을 모아 뿌리공원에 이 유래비를 세웁니다(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온양방씨는 80,445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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