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부 공씨(曲阜 孔氏) 시조, 공소(孔紹),공자(孔子), 조상인물
곡부공씨시조 및 본관의 유래
곡부(曲阜)는 중국(中國) 산동성(山東省) 제령도(濟寧道)에 위치한 고을이름으로 일찍이 주(周) 나라 무왕(武王)의 아우 주공(周公) 단(旦)이 봉해진 나라였다.
공씨(孔氏)의 시조(始祖) 공자(孔子 : 본명은 구, 자는 중니)는 중국(中國) 노(魯)나라 추읍(陬邑 : 곡부현)에서 태어나 세계 4성(四聖)의 한 사람으로 존앙되어 왔으며, 일찍이 인(仁)을 이상(理想)의 도덕(道德)이라 하여 효제(孝悌)와 충서(忠恕)를 이상(理想)의 근저(根柢)로 삼고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며 치국(治國)의 도(道)를 설(說)하였고, 육경(六經)을 산술(刪述)하여 유교(儒敎)의 시원(始源)을 이루었다. 그의 언행(言行)을 적은「논어(論語)」가 전한다.
공자(孔子)의 51세손(世孫)인 공 완(孔 浣)의 아들 형제 중 장자(長子) 사회(思晦)는 중국(中國)에서 세거(世居)하였고, 차자(次子)인 소(紹)가 원(元) 나라 순제(順帝 : 제 15대 황제, 재위기간 : 1333~1367) 때 한림학사(翰林學士)로 1351년(공민왕 즉위)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를 배종(陪從)하고 고려(高麗)에 들어와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 내사문하성의 정2품 벼슬)로 회원군(檜原君)에 봉해지고 관향(貫鄕)을 창원(昌原)으로 사적(賜籍) 받음으로써 우리나라 공씨(孔氏)의 문호(門戶)가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처음에 사적(賜籍)받은 창원(昌原)을 본관(本貫)으로 삼았으나 1794년(정조 18) 공자(孔子)의 고향(故鄕)인 곡부(曲阜)로 개관(改貫)하게 되었다.
공씨(孔氏)의 본관(本貫)은 곡부(曲阜)를 비롯하여 파평(坡平)․수원(水原)․부평(富平)․남양(南陽) 등 45본(本)까지 있는 것으로 전(傳)해지나 현존(現存)하는 관향(貫鄕)은 곡부 공씨(曲阜孔氏) 단본(單本)이다.
곡부 공씨는 소(紹)의 아들 녀(帤)가 고려조(高麗祖)에서 집현전 태학사(集賢殿太學士)를 거쳐 조선(朝鮮)이 개국(開國)한 후 한성윤(漢城尹)과 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 : 경연과 장시를 맡아보던 관청의 종2품 벼슬)을 지냈으며 글씨에 능했고 당시의 권신(權臣) 이인임(李仁任)의 전횡(專橫)을 논척했으며, 조선이 개국한 후 한성판윤을 지냈으며, 명나라 사신으로 수차 다녀왔다.
차손 은은 고려(高麗)에서 평장사(平章事)를 지냈으며 포은 정몽주(鄭夢周)와 목은 이색 양문에서 수학하여 성리학을 강론하고 불교의 폐단이 심하자 척불소를 여러 차례 올리다 미움을 받아 유배되었다가 조선이 개국하자 두문동에 들어가 절의를 지켰으며, 승국명류표방록에 구일지수로 일컫는다.
또한 태종(太宗)이 여러 차례 불렀으나 , 나아가지 아니하고, 순천으로 유배되어 적소에서 서거 하였다.
한편 부(俯)의 손자(孫子) 성길(成吉)은 한성 판윤(漢城判尹)을, 봉명(鳳鳴)은 목사(牧使)를 지냈고, 평장사(平章事) 은의 손자(孫子)인 전(畋)도 참판(參判)을 역임한 사문(斯文), 대사성(大司成 : 성균관의 정 3 품 으뜸 벼슬)에 오른 기(頎)와 함께 가문을 대표했다.
특히 1507년(중종 2)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한 서린(瑞麟)은 곡부 공씨(曲阜孔氏)가 자랑하는 인물(人物)이다. 그는 일찍이 김굉필(金宏弼)의 문하(門下)에서 학문(學問)을 연마하고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와 친교를 맺었으며 기묘사화(己卯士禍)로 화를 입은 선비들의 무죄를 상소하다가 관직이 삭탈당하기도 했으나, 정권을 장악하여 전횡을 일삼던 김안로(金安老)가 죽은 후 경기도 관찰사(京畿道觀察使)와 대사헌(大司憲 : 사헌부의 종 2 품 벼슬)을 역임하였다.
그외 1794년(정조 18)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하여 병조 좌랑(兵曹佐郞)을 지낸 윤항(胤恒)과 성균관 대제학(成均館大提學)을 역임한 성학(聖學)이 유명했으며, 한말(韓末)에 와서는 항일지사(抗日志士) 수(洙)가 일제에 항거하여 구국 대열(求國隊列)에 앞장섰고, 1947년에 문단에 등장한 중인(仲仁)은 신낭만주의(新浪漫主義)를 표방하여 전통적인 서정(抒情)을 현대감각으로 포착하는 시(詩)를 썼으며 종군작가단(從軍作家團)의 일원으로 애국심을 고취하는 많은 작품을 남겨 가문(家門)을 빛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곡부공씨(孔氏)는 전국에 총 89,33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의 성씨 밴드페이지 & 유튜브 채널과 협업 중인 (사)한국뿌리문화보존회 / 한국성씨총연합회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780여 개 성씨(본관)의 유래를 시리즈로 연재하여 소개합니다.
이 게시물은 서기 2005년 3월 30일자로 <한국성씨총연합회>에서 발행한 [한국성씨총감]에 수록된 내용을 이곳 한국인의 성씨 밴드페이지에 소개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2015년 통계청 실시 인구총조사(매 15년마다 실시):
- 대한민국 전체 인구수 : 49,705,663명
- 5인 이상의 성씨 본관 : 532개
- 기타 : 91,10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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