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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제주 고(高)씨 시조 : 고을나왕, 본관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5.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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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고(高)씨 시조 : 고을나왕, 본관


시조(始祖) 고을나왕(高乙那王)
고을나는 3성신화에 나오는 고 · 양 · 부(高 . 良 . 夫) 3 신인 중 제1어른으로서 기원전 2337년 갑자(甲子)년에 탁라국(毛羅國)을 세우고 임금이 되었다. 이 고을나왕은 제주고씨(濟州高氏)의 시조(始祖)이다. 중국의 연호(年號)로는 당뇨(唐堯) 21년에 해당되며 이는 단군의 개국 무진(戊辰 : BC2333년)보다 4년이 앞선다. 이 년대는 상고시대의 기원이 씨족사회로부터 시작한 것과 같은 무렵을 뜻하므로 매우 오랜 년대로 추정하고 있다.

탐라국왕세기 (耽羅國王世紀) 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이 때 나라의 창건시조 고을나왕은 군장(君長:임금)으로 서 나이는 1천여세를 살았다. 이를 중국 상고시대의 제왕기와 비교해보면 삼황오제 가운데 천황과 지황은 각각 1만 8천세이고 인황씨는 4만 5천 6백세라 하였다,

그 이래로 유소(有果)씨, 수인(燧人)씨, 복희(伏羲)씨, 신농(神農)씨, 헌원(軒轅)씨에 이르러 비로소 천체(天體) 기상을 보아 갑자역상(甲子歷象)을 만들어 인월(寅 月 )로써 해의 첫달로 삼고 윤달을 차례로 해를 채우니 이런 옛일로 보아 고씨 900년은 15갑자 당나라 요(堯) 임금의 갑진(甲辰)과 단군(檀君)의 무진(戊辰)과 다 같은 시대에 해당된다.

탐라국(耽羅國) 왕세계 (王世系)
①고을나왕(商乙那王) (BC2337-BC2206) - ②건 왕(建王) (BC2206-BC1767) - ③삼계왕(三繼王) (BCl767-BC1123) ­ ~~~
㊵ 천원왕(天元王) (AD808-AD833) - ㊶호공왕(好恭王) (AD833-AD858) - ㊷소 왕(昭 王) (AD858-AD883) ­ ㊸ 경직왕(敬直王) (AD883-AD908) - ㊹민 왕(岷 王) (AD908-AD933) - ㊺ 자건왕( 自堅王) (AD933-AD938) - ㊻ 미로태자(末老太子) (AD938)

고씨의 연원
가. 삼성 (三姓)의 신화(神話)
고 · 양 · 부(高 . 良 . 夫) 삼성의 신화는 어느 시대에 이르러서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신화가 아니라 오랜 옛날부터 자연적. 인문적 환경 속에서 형성되어 면면히 구전 (口傳)되어 온 것으로 영주지(瀛州誌)를 비롯한 각종 문헌(文獻)에 기록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삼성의 신화를 가장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문헌은 제주 도 역사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영주지 (瀛州誌)가 있다. 영주(瀛州)는 탐라(耽羅) 즉 제주도의 별칭(別稱)으로 이 책은 고려 말엽에 편찬된 것으로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등이 이 책의 내용을 참고하여 인용하고 있다.

이 책에 의하면 “영주(瀛州:제주도)에는 태초에 사람 이 없었는데 홀연(忽然)히 세 신인이 한라산(鎭山:漢祭 山) 북쪽 기슭 모홍혈(毛興穴)에서 솟아났다.(溫州太初無人物也忽有三神人從地源出鎭山北麗有穴曰毛興) 장(長)은 고을라(高乙那) 차(次)는 양을라(良乙那) 셋째는 부을라(夫乙那)라 하였다. 그들의 용모는 매우 크고 비범(非凡)한 모습이었다.(長曰高乙那次曰良乙那三 曰夫乙那狀祝基偉器度寬餘絶無人世之態也) 그들은 늘 가죽옷을 입고 고기만 먹으며 바다에서 고기잡이(漁業)와 사냥(狩獵)을 업을 삼고 살았다."(皮衣肉食常以遊撮 爲事不成家業矣)
이는 삼신인(二神人)인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는 그들이 탄생하고 난 후 수렵 (狩獵)과 어로(漁撈)로 삶을 이어가고 혈거(穴居)생활을 하였다는 것으로 이는 제주도의 최초 인간의 기거(起居)역사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다. 이들 삼신인들은 제주의 최초 토칙인으로 이 섬을 지배하는 부족으로 서로가 협동하여 탐라국을 건설하였으며 이분들은 제주를 본관(本貫)으로하는 고씨(高氏), 양 씨(梁氏), 부씨(夫氏)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나. 모홍혈(毛興穴)
제주도 신화의 유서깊은 유적지인 모홍혈은 삼성혈(三姓穴)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성역으로 보존되어 왔고 이 곳은 고·양·부(高.梁.夫) 삼성의 시조가 태어난 곳이고 생활을 시작한 근거지로서 제주도에 최초로 인간 이 정 착한 문화의 발상지(發祥地)이다.
제주시 남쪽에 위치한 삼성사(三姓祀) 경내에는 유적 지(遺蹟地)인 삼성혈(三姓穴)은 지방문화제 사적 134호 로 지정되어 있고, 삼성전(三聖殿)은 고(高) · 양(梁) . 부(夫) 삼성 (三姓)의 시조이신 고(高) · 양(良) · 부(夫) 심신인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성역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다. 혼인지 (婚炳址)
삼성신화에 나타난 삼신인(三神人)과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온평리에서 삼공주(三公主)를 맞이해 해안 근처에 있는 못(貯水池)에서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나이 차례로 부부가 되는 혼례식을 올렸다는 혼인지는 제주도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러한 유적들은 원시 제주도의 씨족 형성과정과 배경을 설명할 수 있는 최초의 사건으로 이들이 모두 외부세계 에서 들어온 외래(外來) 족(族)이라는데 주목해야 할 점이다. 또한 삼공주는 5곡의 종자(種子) 와 송아지(幼牛) 와 망아지(幼馬) 등 가축(家畜)을 가져와 삼성인의 섀로 운 삶을 영위하게 하였으니 이는 수렵(狩獵)과 혈거(穴居)의 원시생활(原始生活)을 한 삼신인(三神人)에게 축산(畜産)과 농경(農耕)의 문화를 가져와 새로운 생활로 전환하게 했다는 의미를 닮고 있다. 또한 제주도에는 상고시대의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는 석기, 토기, 골각기 등의 생활도구와 지석 입석 및 패총 등의 생활 유적지 등 을 찾을 수 있다.

라. 삼사석(三射石)
제주시 삼양동에는 삼사석(三射石)이라는 제주지방문 화재 기념물 제4호로 지정된 유적지가 있는데 이 유적지 에 관한 000기록에 의하면 삼신인이 삼공주를 배필로 정하고 성업을 시 작한지 900년 후에 한라산에 올라 누가 활을 잘 쏘는가를 겨눈 결과 고을나의 화살은 돌을 꿰뚫었고 양을나의 화살은 화살 위쪽에 붙은 깃털만 돌에 스쳤고 부을나의 화살은 사적 (射的)에 미치지 못했다. 이 결과에 따라 고을나는 제1도 양을나는 제2도(都) 부을나는 제 3도를 나누어 살게되었다고 한다. 제1도는 지금의 일도리로 제주시이고 제2도는 산방리로 지금의 대정(大 靜)이고 제3도는 토산리(兎山里)로 지금의 정의(旌義)이다.

 

한국인의 성씨 밴드페이지 & 유튜브 채널과 협업 중인 (사)한국뿌리문화보존회 / 한국성씨총연합회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780여 개 성씨(본관)의 유래를 시리즈로 연재하여 소개합니다.

이 게시물은 서기 2005년 3월 30일자로 <한국성씨총연합회>에서 발행한 [한국성씨총감]에 수록된 내용을 이곳 한국인의 성씨 밴드페이지에 소개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2015년 통계청 실시 인구총조사(매 15년마다 실시):
- 대한민국 전체 인구수 : 49,705,663명
- 5인 이상의 성씨 본관 : 532개
- 기타 : 91,10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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