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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능성구씨(綾城具氏) ,능성구씨시조(始祖),구존유,능성구씨본관,능성구씨조상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5.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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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성구씨(綾城具氏) ,능성구씨시조(始祖),구존유,능성구씨본관,능성구씨조상


능성구씨(綾城具氏) 연원

능성구씨시조(始祖)인 구존유(具存裕) 이전의 구씨(具氏)를 찾아보면 고려(高麗) 태조(太祖) 원년(918년)에 궁예(弓裔)의 태봉국(泰封國) 시중(侍中)이었던 구진(具鎭)이 나주도대행대시중(羅州道大行臺侍中)에 임명되었고, 후백제(後百濟)의 장군 구도(具道)와 그의 아들 구단서(具端舒)가 있었으며, 고려 숙종(肅宗) 6년(1101년)에 탐라(耽羅=지금의 제주) 성주(星主) 배융부위(陪戎副尉)인 구대(具代)가 유격장군(遊擊將軍)에 임명되었던 사실을 고려사(高麗史)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록 전고(典考)가 없어 능성구씨(綾城具氏)의 시조(始祖)인 구존유(具存裕)와 이들과의 관계를 알 수는 없지만 구씨(具氏)가 당시 나주(羅州)나 능성(綾城) 지역의 토착 성씨(姓氏)로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능성현(綾城縣) 토성조(土姓條)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능성현(綾城縣) 토성조(土姓條)에도 구씨(具氏)를 능성현(綾城縣)의 대표적인 성씨 (姓氏)로 기록하고 있다.

능성구씨(綾城具氏)는 구존유(具存裕)를 시조(始祖)로 하며 고려 말 조선 초에 활동하였던 7세(世)의 인물들을 파조(派祖)로 하여 판사파(判事派)⋅전서파(典書派-无后)⋅시랑파(侍郞派)⋅좌정승파(左政丞派)⋅판안동파(判安東派)⋅도원수파(都元帥派)⋅재신파(宰臣派-在北)⋅낭장파(郎將派)⋅감무파(監務派)⋅임천군사파(林川郡事派-无后)⋅참판파(叅判派)⋅문천군사파(文川郡事派) 등 12개 파(派)로 분파(分派)하였다. 이 중에서 이북지방에 후손들이 살고 있다고는 하나 남북 분단으로 인하여 전고(典考)를 알 수 없는 재신파(宰臣派)와 후손이 없어 무후(无后)된 전서파(典書派)와 임천군사파(林川郡事派) 등 3개 파(派)를 제외한 9개 파(派)의 후손들이 실존하여 번영하고 있다.

2001년에 능성구씨사적비(綾城具氏事蹟碑)를 시조(始祖) 단역(壇域)에 건립하였다. 글은 LG그룹 명예회장이며 능성구씨대종회(綾城具氏大宗會) 회장인 구자경(具滋暻)이 짓고 글씨는 능성구씨대종회(綾城具氏大宗會) 수석부회장인 구왕회(具旺會)가 썼다.

능성구씨본관(本貫) 연혁(沿革), 능성구씨조상
능성(綾城)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綾州)의 옛 지명으로 백제(百濟) 때 이릉부리군(尒陵夫里郡)ㆍ죽수부리(竹樹夫里)ㆍ 인부리(仁夫里) 등으로 불리어지다가,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때 능성(綾城)이라 개칭되었으며, 고려(高麗) 초 나주(羅州)에 소속시켰다가 고려(高麗) 인종(仁宗) 21년(1143년)에 현령(縣令)을 두었고, 조선(朝鮮) 인조(仁祖) 10년(1632년)에 인헌왕후(仁獻王后=원종의 비)의 관향(貫鄕)이라고 하여 능주(綾州)로 승격시켜 목사(牧使)를 두었으며, 1913년에 능주군이 화순군에 편입되었다.

능성구씨시조(始祖) - 구존유(具存裕)
능성구씨(綾城具氏)의 시조(始祖)는 구존유(具存裕)이다. 그는 고려(高麗) 문괴(文魁=문과 장원)로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에 올랐다. 그의 배위(配位)는 신안주씨(新安朱氏)이며, 장인(丈人)은 송(宋)나라 사람인 청계(淸溪) 주잠(朱潛)이다.

송(宋)나라가 몽고(蒙古, 뒤에 원나라가 됨)에게 패망하자 주잠(朱潛)은 고려(高麗) 고종(高宗) 11년(1224년)에 엽공제(葉公濟)⋅진조순(陳祖舜) 등 7학사(學士)와 함께 금성(錦城=지금의 나주)으로 망명해 왔으며 원(元)나라가 이들 망명객을 추적하자 이름을 적덕(積德)이라 고치고 능주(綾州=綾城) 고정리(考亭里)에 숨어 살았다.

구존유(具存裕)는 주잠(朱潛, 호는 淸溪)의 딸과 혼인(婚姻)하여 능성구씨(綾城具氏) 번성(蕃盛)의 기틀을 세웠다. 주자학으로 유명한 회암(晦庵) 주자(朱子=朱熹)는 그의 처고조(妻高祖)가 된다.

능성구씨(綾城具氏)의 시조(始祖)인 구존유(具存裕)의 묘소(墓所)에 대하여 전남 화순군 춘양면 천태산(天台山) 좌측 풍취라대형(風吹羅帶形)이라는 기록은 있으나 실전(失傳)하여 전남 화순군 한천면 정리에 설단(設壇)하고 1979년에 단비(壇碑)를 세웠는데 24대손 구행서(具行書)가 비문(碑文)을 짓고 25대손 구회승(具會升)이 글씨를 썼다. 그 후 1999년에 알기 쉽게 번역한 단비(壇碑)를 위엄을 갖추어 개수(改竪)하였으니 LG그룹 명예회장이며 능성구씨대종회(綾城具氏大宗會) 회장인 26대손 구자경(具滋暻)이 개수기문(改竪記文)을 짓고 27대손 구본혁(具本赫)이 글씨를 썼다.

2世 - 구민첨(具民瞻)에서 6世 - 구의(具義) 까지의 자료는 아래 링크에서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인의 성씨 밴드페이지 & 유튜브 채널과 협업 중인 (사)한국뿌리문화보존회 / 한국성씨총연합회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780여 개 성씨(본관)의 유래를 시리즈로 연재하여 소개합니다.

이 게시물은 서기 2005년 3월 30일자로 <한국성씨총연합회>에서 발행한 [한국성씨총감]에 수록된 내용을 이곳 한국인의 성씨 밴드페이지에 소개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2015년 통계청 실시 인구총조사(매 15년마다 실시):
- 대한민국 전체 인구수 : 49,705,663명
- 5인 이상의 성씨 본관 : 532개
- 기타 : 91,10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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