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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봉화 금(琴)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4.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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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봉화금씨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봉화 금씨
성씨 금(琴)
작품명 비천(飛天)
조각가 박 덕 인
조형물번호 24

#봉화금씨

먼저 봉화금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조형물의 전체 모습은 산의 모양으로 높은 기상과 무궁한 발전을 상징합니다. 무궁화의 모양은 나라를 빛내는 많은 인재를 배출함을 나타내고, 날개의 형상은 문중 모든 이에 활기찬 모습과 높은 이상을 심어줌을 의미하고, 사람의 형상은 선조와 후손의 끝없는 사랑을 뜻한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봉화금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봉화금씨의 시조 금의(琴儀) 영렬공은 고려중엽의 명신으로 성품이 강직하시어 지방을 다스릴 때는 철태수라 불렸고 염찰(廉察)로 지방에 나가서는 관리를 단속하여 민폐를 일소했으며, 한림학사 때는 많은 제자를 거느려 한림별곡에 금학사의 옥순문생(玉筍門生)이라 읊어졌습니다. 평장사, 관리부사, 태보를 거쳐 하야하여 삼한벽상공신에 오르시고 별세하신 후 시호를 영렬(英烈)로 받았습니다.

후대에 조선조 태조 때 등과하시어 전라감사, 대사성을 지낸 청백리 청원정공 금유(柔)와 세조 때 문·무과에 올라 왕이 베푸는 잔치에서 시를 주고 받은 동래공금휘(琴暉) 등 많은 분들이 문·무과에 급제하거나 학행으로 관직에 나가도 벼슬에 연연치 않고 곧 물러나서 학덕을 닦았습니다.

학문계에는 특히 퇴계의 문인이 많은데 선생의 고제로 명필 매헌공 금보(輔), 학행으로 봉화현감을 지낸 성재공 금난수(蘭秀), 학문과 덕행으로 오천군자(烏川君子)라 일컫던 일 휴당 금응래(應來)과 면진재공 금응훈(應壎)이 있고, 송우암의 고제에 수경재공 금봉의(鳳儀)도 있습니다.

또 온갖 설화를 남긴 효자들이 있고 우국충정으로, 임진왜란시 중봉(重峰)선생과 함께 창의하여 청주에서 대첩을 거두신 후 금산에서 전사하신 덕운재공 금응신(應信) 등 많은 분이 공신록권과 창의록에 있고, 병자호란의 굴욕에 분격한 숭정처사(崇禎處士) 금발(琴撥)도 있으며, 일제에 항쟁한 독립유공자도 많았습니다.

이렇듯 봉화금씨는 효제신양(孝悌信讓)의 가훈을 부위공파, 동래공파, 군위공파, 장사공파, 관찰공파, 사정공파, 판서공파로 갈라져 전국에 퍼져 살고 있습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봉화금씨는 23,301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https://youtu.be/zQkpMh3MGBI?si=R6-5e503OPQ6y6_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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