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함열 남궁(南宮)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함열 남궁씨
성씨 남궁(南宮)
작품명 南宮 - 역사의 문
조각가 박성순
조형물번호 235
먼저 함열 남궁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함열남궁씨 가문의 업적을 자손들이 자긍심과 존경심을 가질 수 있도록 역사의 문으로 조형화 하였습니다. 좌측의 검과 중앙의 유래비는 문무를 상징하였고, 7개의 사각은 함열남궁씨의 7개파를 표상화 하였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함열남궁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시조(始祖)는 남궁원청(南宮元淸)이며 함열현(咸悅縣) 사람으로 961년(고려 광종12년) 3월14일에 출생했습니다. 976년(고려 경종1년)에 동당시(東堂試)에 급제하여 비서랑이 되었으며 같은 해 김행성, 강전 등과 함께 송(宋)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국자감에서 공부하고 이듬해 대과에 급제한 뒤 귀국하여 문하성(門下省)에 근무했습니다.
그 후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988년(성종7년)에는 당시 문하시중인 경주인 이총섬(李寵暹)과 해주오씨 시조인 오인유(吳仁裕) 그리고 전의이씨 이윤관(李允寬) 등과함께 사직(社稷)오묘(五廟)와 국자감(國子監) 등의 창건을 주청함으로써 이듬해 태묘(太廟)를 짓기 시작하여 다음해에 태묘가 낙성되고 국자감이 창립되었죠.
991년(성종13년) 대장군에 임명되어 여진적(女眞賊)을 백두산밖으로 물리친 공으로 함열백(咸悅伯)(구 감물아현(舊甘勿阿縣))에 봉해졌으며 관직이 문하시중에 이르렀죠. 따라서 후손들이 함열(咸悅)을 관향으로 삼았습니다.
족성서(族姓書)에 따르면 남궁씨는 복성(復姓)으로 본래 황족(皇族)으로 희씨(姬氏)였는데 은(殷)나라 말에 주문왕(周文王)의 사우(四友) 중 남궁자(南宮子)라는 분이 주(周)나라 건국에 기여하고 남궁에 살았으므로 성을 남궁(南宮)이라 하였다고 하며, 시조 남궁원청(南宮元淸)의 원조(遠祖)는 일찍이 조선으로 건너와 사도(使徒)로서 백성들에게 시(詩). 서(書). 예(禮). 악(樂)을 가르쳤다고 하나 상고(詳考)할 수 없습니다.
함열남궁씨는 조선조의 명현(名賢)으로 멀리 중국에 까지 문명(文名)을 날린 부제학공 남궁찬(南宮璨)을 세보16세(世譜16世) 중시조로 섬기며, 참봉공파(參奉公派) 교리공파(校理公派)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 지평공파(砥平公派) 연안공파(延安公派) 승지공파(承旨공派) 모현공파(慕賢公派) 등 7개파를 형성하고 있습니다(뿌리공원 문중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함열남궁씨의 인구는 20,715명이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2WuSs5NqqTUnHxP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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