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청도 김(金)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청도김씨
성씨 김(金)
작품명 세계의 유산(대동여지도)
조각가 신동수
조형물번호 233
먼저 청도김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청도김씨 조형물은 고산지 김정호를 상징하는 대동여지도의 형상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작품은 청도김씨 문중의 기개와 번영으로 청렴한 성품을 표현하였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청도김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청도김씨 시조는 영헌공(英憲公) 김지대(金之岱)이며 초명은 김중룡(金仲龍)이고 경순왕(敬順王)의 9세손으로 고려 명종20년 1190년 청도 대성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학문에 힘써 육례지문(六藝之文)을 통달하였으며 공은 고종5년 강동지난에 태학생으로 대부종군하여 방패에 국환신지환(國患臣之患)이요 친우자소우(親憂子所憂)라 대친여보국(代親如報國)이면 충효가쌍수(忠孝可雙修)라는 순두시를 대서(大書)하여 종군하니 원수 조충(趙沖)장군이 이를 보시고 경탄하였습니다.
개선하여 1219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전주사록을 시작으로 보문각교감, 진주목사를 거쳐 1240년 전라도안찰사로, 이후 1258년 첨서추밀원사로 승진하여 북계지병마사를 겸직하여 서북 40여성을 평정하였죠. 이어 추밀원부사와 동지추밀원사를 거쳐 오산군(鰲山君)으로 책봉되었으며 1260년 정당문학 이부상서를 역임후 평장사(平章事)로 제수되었습니다.
이후 수태부중서시랑평장사(守太傅中書侍郞平章事, 正二品)로 치사(致仕)하였으며 1266년 병인 2월 계사에 77세로 고종(考終)하니 나라에서 영헌공 시호(諡號)를 내렸습니다.
이후 명조(名祖)의 훈공(勳功)과 음덕이 후세에 뻗쳐 2세 김선장(金善莊)은 고려대호군, 3세 김득제는 금자광록대부, 4세 김복기는 합문지후, 5세 김인수는 고려봉선대부, 6세 김한귀는 습봉(襲封) 오산군에 시(諡)호는 원정공(元貞公), 7세 김린은 봉상대부 지제고, 8세 김점은 의정부좌참찬 시(諡)호는 호강공(胡剛公)입니다.
8세 이하는 더 적지 아니하며 이와 같이 명경거공(名卿巨公)이 대를 이은 명문(名門)으로 후손이 창대하여 여경(餘慶)이 무궁할 것입니다(뿌리공원 문중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청도김씨는 91,293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CVVOTrRTHOnQN9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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