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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영양 남(南)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by 뿌리 찾는 심마니 2025.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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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영양 남(南)씨의 조형물과 문중의 유래를 유교수가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함께하시죠.


영양 남씨
성씨 남(南)
작품명 한국의 名閥 - 英陽 南 氏
조각가 이종용
조형물번호 230

 

먼저 영양 남씨 문중이 설치한 조형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南자를 크게 새겨 뿌리공원을 찾는 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남씨 선조들의 위대한 업적을 높이 받들고 세상에 널리 알려 자긍심과 존경심을 갖도록 하였죠. 하단의 세 개 층은 영양, 의령, 고성 남씨의 삼관이 화합과 목족을 초석과 같이 탄탄히 하자는 의미가 있게 하였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영양남씨 문중의 유래에 대해 돋보기로 비춰보겠습니다.

남(南) 씨의 유래는 시조 영의공(英毅公)으로부터 시작 하였습니다. 시조의 본성은 김(金) 씨요 이름은 충(忠)이니 중국 여남(汝南) 사람입니다.

당(唐)나라 현종 때 봉명사신 안렴사(按廉使)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태풍을 만나 신라 유린(有隣) 죽도에 표착하였는데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항이죠. 이때가 신라 경덕왕 14년 서기 755년으로서 경덕왕은 공이 여남에서 왔으므로 남(南)씨로 사성하고 이름을 민(敏)으로 하여 영의공이란 시호를 내렸습니다. 시조의 묘소는 영양군 동부리에 있으며 표착지 축산항에 유허비를 세워 남씨의 발상지로 하였죠.

고려 충렬왕 때에 이르러 영양(英陽) 의령(宜寧) 고성(固城) 삼관으로 나누어 졌으며 영양 남씨 중시조인 장손 파 남홍보(南洪輔)는 고려 벼슬이 중대광도첨의찬성사 (重大匡都僉議贊成事)로 영양군(君)으로 습봉(襲封) 되었습니다. 울진군 화방(花坊) 산수가 수려한 곳에 설단을 하여 제향을 올리고 있습니다(뿌리공원 문중의 유래비 인용).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영양남씨는 82,272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https://youtu.be/zIShGYE750Q?si=b1qOzWVnrT-uQX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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